
심물철학으로 다시 읽는
[羅石千字文詩]
074. 신종의령(愼終宜令)
삼갈 신, 마칠 종
마땅 의, 좋을 령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자리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뜻을 세우고,
시작에는
누구나 힘차다.
그러나
끝을 잃으면
처음의 아름다움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삼가함은
처음을 지키는
가장 깊은 도리이다.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마무리할 때
그 인품이 드러난다.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보다
그 자리를 내려올 때,
많이 얻었을 때보다
나누고 떠날 때,
사람의 참모습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음이
끝까지 바르면
행동도 끝까지 바르고,
행동이
끝까지 바르면
덕은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끝맺음에서 찾는다.
노을은
하루를 마감하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낙엽은
조용히 떨어져
새봄의 거름이 된다.
끝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는
생명의 문이다.
그러므로
마무리를 삼가는 사람은
마침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처음의 마음을 지켜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처럼 완성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세월이 지나도
향기를 잃지 않는
참다운 군자의 길이다.
― 26 7.14.불한산방 라석
註(주)
신종의령(愼終宜令)은 『예기(禮記)』의 "필극신기종 (必克愼其終) 내위진선 (乃爲盡善)", 곧 "반드시 그 마무리를 삼가야 비로소 더없이 선하게 된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처음이 없는 이는 없으나 끝을 잘 이루는 이는 드물다."는 구절과도 서로 통한다.
사람은 시작할 때에는 누구나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흔들리고, 성공은 교만을 부르며, 익숙함은 처음의 정성을 잊게 한다. 그래서 성인은 시작보다 끝을 더욱 경계하였다. 마지막을 삼간다는 것은 단지 일을 마무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인격의 완성이다.
마음이 중도에서 변하면 심물의 조화도 끊어지지만, 끝까지 바른 마음을 지키면 심물지파(心物之波)는 더욱 깊고 넓게 퍼져 나간다. 존재의 진실은 한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덕행 속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성인은 "신종여시(愼終如始)"라 했다. 끝을 삼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라는 뜻이다.
물파미학 또한 아름다움을 화려한 시작보다 아름다운 마침에서 찾는다. 강은 바다에 이를 때 비로소 자신의 길을 완성하고, 한 사람의 생애도 마지막까지 지켜 낸 신의와 성실 속에서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된다.
그러므로 신종의령(愼終宜令)은 단순히 끝을 조심하라는 교훈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하나로 잇는 시종일관 (始終一貫)의 철학이다. 시작의 결심이 끝까지 이어질 때, 삶은 비로소 더없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그 향기는 세월을 넘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
― 26.7.14.압록강변 단동에서 라석
심물철학으로 다시 읽는
[羅石千字文詩]
074. 신종의령(愼終宜令)
삼갈 신, 마칠 종
마땅 의, 좋을 령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자리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뜻을 세우고,
시작에는
누구나 힘차다.
그러나
끝을 잃으면
처음의 아름다움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삼가함은
처음을 지키는
가장 깊은 도리이다.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마무리할 때
그 인품이 드러난다.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보다
그 자리를 내려올 때,
많이 얻었을 때보다
나누고 떠날 때,
사람의 참모습은
더욱 분명해진다.
마음이
끝까지 바르면
행동도 끝까지 바르고,
행동이
끝까지 바르면
덕은 세월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끝맺음에서 찾는다.
노을은
하루를 마감하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낙엽은
조용히 떨어져
새봄의 거름이 된다.
끝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는
생명의 문이다.
그러므로
마무리를 삼가는 사람은
마침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처음의 마음을 지켜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처럼 완성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세월이 지나도
향기를 잃지 않는
참다운 군자의 길이다.
― 26 7.14.불한산방 라석
註(주)
신종의령(愼終宜令)은 『예기(禮記)』의 "필극신기종 (必克愼其終) 내위진선 (乃爲盡善)", 곧 "반드시 그 마무리를 삼가야 비로소 더없이 선하게 된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말이다. 또『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처음이 없는 이는 없으나 끝을 잘 이루는 이는 드물다."는 구절과도 서로 통한다.
사람은 시작할 때에는 누구나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흔들리고, 성공은 교만을 부르며, 익숙함은 처음의 정성을 잊게 한다. 그래서 성인은 시작보다 끝을 더욱 경계하였다. 마지막을 삼간다는 것은 단지 일을 마무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는 인격의 완성이다.
마음이 중도에서 변하면 심물의 조화도 끊어지지만, 끝까지 바른 마음을 지키면 심물지파(心物之波)는 더욱 깊고 넓게 퍼져 나간다. 존재의 진실은 한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는 덕행 속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성인은 "신종여시(愼終如始)"라 했다. 끝을 삼가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라는 뜻이다.
물파미학 또한 아름다움을 화려한 시작보다 아름다운 마침에서 찾는다. 강은 바다에 이를 때 비로소 자신의 길을 완성하고, 한 사람의 생애도 마지막까지 지켜 낸 신의와 성실 속에서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된다.
그러므로 신종의령(愼終宜令)은 단순히 끝을 조심하라는 교훈이 아니라, 처음과 끝을 하나로 잇는 시종일관 (始終一貫)의 철학이다. 시작의 결심이 끝까지 이어질 때, 삶은 비로소 더없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그 향기는 세월을 넘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
― 26.7.14.압록강변 단동에서 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