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답ㆍ무선무악(無善無惡)

손병철
2026-08-05

135a5159f59de.jpg

무선무악(無善無惡)

ㅡ라석선생에게


좋아하는 공부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을 때,

생각은 나를 떠나고

앎만이 숨처럼 드나든다.


아름다운 노래가

귀에 머무는 순간,

기쁨도 슬픔도 이름을 잃고

소리는 그대로 나를 살린다.


밤하늘에 박힌 별 하나,

깜박임마저 말이 없고

밝음과 어둠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 뒤다.


외로운 길모퉁이에서

들꽃 하나 고개를 들면,

반긴 것도 내가 아니고

외로운 것도 내가 아니다.


그때 선이라 부를 것도 없고

악이라 밀어낼 것도 없이,

나는 다만

살아 있음의 온기 속에 놓인다.


판단이 쉬어 간 자리,

옳고 그름이 잠든 틈에서

세계는 나를 꾸짖지 않고

나 또한 세계를 가르지 않는다.


무선무악,

그것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이미 충만하여

더 덧붙일 것이 없는 평화.


2026.1.14. 後稠 作



후조선생의 "무선무악"시에 대한 심물철학적 감상



이 시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판단 이전의 존재 상태를 조용히 드러낸다. 화자는 어떤 교훈을 말하지 않으며, 깨달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좋아하는 공부, 소리, 별빛, 들꽃과 마주하는 순간마다, 마음과 대상이 서로를 비추며 분별 없이 함께 있는 자리를 보여 준다.


필자의 심물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에서 ‘나’는 사유의 주체로서 세계를 해석하지 않는다. 생각이 떠나고, 기쁨과 슬픔이 이름을 잃으며, 밝음과 어둠의 경계가 사라질 때, 마음과 사물은 더 이상 나뉘지 않는다. 이는 마음이 세계를 대면하는 주체가 아니라, 세계의 작용 속에서 함께 작동하는 조응의 상태, 곧 철학자 심원이 말한 심물합일의 경험적 장면이다.


특히 “반긴 것도 내가 아니고 / 외로운 것도 내가 아니다”라는 구절은, 자아가 감정의 소유자가 되지 않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감정은 일어나지만 붙잡히지 않고, 세계는 해석되기보다 진면목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는 선·악의 판단은 물론, 옳고 그름의 기준도 개입하지 않는다.


이 시가 말하는 ‘무선무악’은 공허한 무차별이 아니다. 그것은 판단이 멈춘 자리에 남는 공백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충만하여 더 보태거나 덜어낼 것이 없는 지족의 상태이다. 심물철학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이는 마음이 세계를 가르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살아 있음의 파동 그 자체의 맑고 따뜻한 기운이다.


따라서 이 시는 어떤 당위적 윤리를 설파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윤리의 장면을 보여 준다. 세계가 나를 꾸짖지 않고, 내가 세계를 가르지 않는 그 순간, 그 조용한 합일의 자리에, 선과 악은 스스로 물러난다. 이 시는 그 물러남의 순간을, 불문학을 전공한 여성적 아름다운 감수성의 섬세한 언어로 정중하게 증언하고 있다.


ㅡ25.1.14. 불한산방에서 라석 씀



心物合一之境

答後稠先生詩"無善無惡"



思息之際覺自來在

(사식지제각자래재)

聲亡其名情未分在

(성망기명정미분재)

明暗未判界先解在

(명암미판계선해재)

我去而在非我在在

(아거이재비아재재)


遇不名迎離不名在

(우불명영리불명재)

生起如然事自在在

(생기여연사자재재)

善無可立惡無可遣

(선무가립악무가견)

判止之處道在其在

(판지지처도재기재)


心不主物物不外心

(심부주물물부외심)

二名俱息一理常在

(이명구식일리상재)

無善無惡非除是非

(무선무악비제시비)

萬象自顯於如然在

(만상자현어여연재)


ㅡ26.1.14.弗寒山房 羅石



심물합일(心物合一)의 경계

ㅡ후조 선생의 시 "무선무악"에 답하여



사유가 멎는 자리에

앎은 스스로 현존하고,

소리는 이름을 잃어도

기쁨과 슬픔은 갈라지지 않는다.


밝음과 어둠이 나뉘기 전에

경계는 이미 풀리고,

나는 사라지나 존재는 남아

‘내가 있음’이 아닌 ‘있음 자체’가 된다.


마주함도 맞이함이라 이름 붙지 않고

떠남도 떠남이라 규정되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저 그러함으로 스스로 그러하다.


선이라 세울 것도 없고

악이라 물리칠 것도 없으니

판단이 멎은 그 자리에

길은 이미 거기 있다.


마음이 물을 주재하지 않고

물이 마음 밖에 있지 않으니

둘의 이름이 함께 멎을 때

하나의 이치는 늘 그러하다.


무선무악이란

옳고 그름을 지운다는 뜻이 아니라

만 가지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삶의 자리이다.


ㅡ26.1.14. 불한재에서 라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