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5. 羅石心物文理哲學
"外剛爲德 內柔爲慈"
"生何處也 吾佛生方"
사람은 밖으로는 굳세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굳셈은 남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덕이어야 한다.
안으로는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는 자비여야 한다.
덕은 밖으로 드러나는 인품이고,
자비는 안으로 흐르는 생명의 향기이다.
겉과 속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하늘은 굳셈으로 만물을 일으키고,
땅은 포용으로 만물을 기른다.
건(乾)과 곤(坤), 음과 양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완성한다.
남자의 굳셈도 덕을 잃으면 거칠어지고,
여자의 부드러움도 지혜를 잃으면 참된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
각자는 저마다의 장점을 지니고, 서로의 다름을 통해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간다.
그러므로 참된 삶은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데 있지 않고,
누가 더 깊이 덕과 자비를 함께 이루는가에 있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찾아야 할 부처는 세상 밖의 우상이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 가장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는 나의 본래 모습이다.
생방(生方)은 삶의 방향이며,
삶을 살아가는 도리이다.
그 방향은 밖을 향해 끝없이 헤매는 길이 아니라,
내 안의 자성을 밝히고,
내 안의 오불(吾佛)을 깨어나게 하는 길이다.
유불선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람을 나누기보다,
한마음으로 자신을 닦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서 삼귀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종교는 화합이 되고, 문명은 도덕이 되며, 인류는 한 가족이 된다.
내 삶의 가장 큰 가치는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의 참된 나,
내 진면목을 찾아가는 데 있다.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
그것이 덕을 이루고 자비를 이루며,
마침내 오불(吾佛)로 살아가는 참된 생방(生方)이다.
ㅡ26. 7. 15. 불한산방 라석
0075. 羅石心物文理哲學
"外剛爲德 內柔爲慈"
"生何處也 吾佛生方"
사람은 밖으로는 굳세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굳셈은 남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덕이어야 한다.
안으로는 부드러워야 한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는 자비여야 한다.
덕은 밖으로 드러나는 인품이고,
자비는 안으로 흐르는 생명의 향기이다.
겉과 속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강함과 부드러움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하늘은 굳셈으로 만물을 일으키고,
땅은 포용으로 만물을 기른다.
건(乾)과 곤(坤), 음과 양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완성한다.
남자의 굳셈도 덕을 잃으면 거칠어지고,
여자의 부드러움도 지혜를 잃으면 참된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
각자는 저마다의 장점을 지니고, 서로의 다름을 통해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간다.
그러므로 참된 삶은 누가 더 강한가를 겨루는 데 있지 않고,
누가 더 깊이 덕과 자비를 함께 이루는가에 있다.
그렇다면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찾아야 할 부처는 세상 밖의 우상이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 가장 깊은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는 나의 본래 모습이다.
생방(生方)은 삶의 방향이며,
삶을 살아가는 도리이다.
그 방향은 밖을 향해 끝없이 헤매는 길이 아니라,
내 안의 자성을 밝히고,
내 안의 오불(吾佛)을 깨어나게 하는 길이다.
유불선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람을 나누기보다,
한마음으로 자신을 닦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서 삼귀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종교는 화합이 되고, 문명은 도덕이 되며, 인류는 한 가족이 된다.
내 삶의 가장 큰 가치는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의 참된 나,
내 진면목을 찾아가는 데 있다.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
그것이 덕을 이루고 자비를 이루며,
마침내 오불(吾佛)로 살아가는 참된 생방(生方)이다.
ㅡ26. 7. 15. 불한산방 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