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시ㆍ장마비

손병철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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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장대비에 짓무른 사방 천지

(돌)

천둥과 벼락에 기겁한 땅낯

(심)

올 비는 와도 짓물지나 말지

(빛)

썩고 병든 것들 쓸어버리게

(달)


ㅡ25.6.21.불한시사 합작시


ㅡ비는 강을 가르지 않고, 사람의 마음만 경계를 만든다. ㅡ

장마철에 북쪽 땅을 돌아 발해를 건너 압록강 하구의 옛 안동, 오늘의 단동에 이르렀다. 이곳에도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삼천리 반도가 본래 하나의 산맥과 강물, 하나의 바람과 구름으로 이어져 있으니 남과 북의 기후가 크게 다를 까닭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낯선 북방의 도시에서 익숙한 빗소리를 듣자 마음 한쪽이 놓였다.

비는 국경을 묻지 않고, 구름은 이념을 알지 못한다. 남쪽 산천을 적시던 장맛비가 북녘 강산에도 내리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오히려 오랜 분단의 부자연스러움을 새삼 일깨운다.


이곳에서 지난해 불한시사의 합작시「장마비」를 다시 읽는다. "장대비에 짓무른 사방 천지 / 천둥과 벼락에 기겁한 땅낯 / 올 비는 와도 짓물지나 말지 / 썩고 병든 것들 쓸어버리게". 이 짧은 네 행의 합작시 안에는 장마철의 풍경만이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마음의 풍경이 담겨 있다. 장대비에 천지가 짓무르고 천둥과 벼락에 대지가 놀라는 모습은 자연의 격렬한 기세이면서, 동시에 갈등과 모순으로 상처 입은 인간 세상의 표정처럼 느껴진다.


비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지만, 지나치면 산과 들을 무너뜨리고 삶의 터전을 휩쓴다. 문명 또한 그러하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세운 제도와 이념이 도리어 인간을 가르고 억압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짓무르게 하는 탁류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시의 마지막 행, “썩고 병든 것들 쓸어버리게”라는 말은 단순한 파괴의 소망이 아니다. 오래 고인 탐욕과 증오, 권력의 오만과 역사의 상처를 씻어내고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달라는 정화의 염원이다. 비는 내려야 하지만 삶을 짓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문명은 발전해야 하지만 사람을 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 또한 나라와 백성을 살피는 바른 길이어야지, 인간의 자유와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압록강에 이르러 바라본 풍경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깊게 하였다. 강폭은 넓고 물길은 유장하다. 달섬이라 불리는 월량도에는 고층 주거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짙은 먹구름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는다. 전쟁으로 끊어진 단교는 녹슨 몸으로 세월을 견디고 있고, 그 곁의 새 다리에서는 밤마다 찬란한 불빛이 강물 위에 길게 번진다. 하나의 다리는 끊어져 역사의 상처를 증언하고, 다른 하나의 다리는 양국의 우의를 말하듯 휘황하게 빛난다.


그러나 다리가 놓였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마음의 길이 열린 것은 아니다.

강 건너 보이는 위화도도 예전과 달라졌다. 한때 바람에 흔들리던 갈대숲은 사라지고 붉은 벽돌집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자연은 문명에 자리를 내주었고, 문명은 강변의 풍경을 바꾸었다. 그러나 강물만은 오래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강은 수많은 군대와 사신과 장사꾼과 유랑민을 건너게 하였고, 시대의 영광과 비극을 말없이 실어 날랐다. 강은 사람에게 오고 가는 물길을 내어 주었을 뿐, 누구도 건너지 못하도록 명령한 적이 없다.


사람을 막는 것은 강물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국경이며 이념이고,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의 장벽이다. 새들은 강 위를 자유롭게 날고, 구름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며, 비는 이편과 저편에 똑같이 내린다. 오직 사람만이 자신이 만든 경계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고 있다. 남북은 그렇게 분단의 세월 속에서 함께 늙어 간다. 언제쯤 사람들도 새들처럼 강을 건너고, 그리운 이를 찾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까. 천둥소리는 멀리 울리고 먹구름은 강 위에 낮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 물음은 빗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가 많아질수록 강 건너 민둥산도 걱정된다. 나무가 부족한 산비탈에 장대비가 쏟아지면 흙은 쉽게 무너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동의 시내도 침수된 적이 있듯 자연의 재난은 국경을 가려 찾아오지 않는다. 강물이 불어나면 이편과 저편이 함께 위험하고, 산이 무너지면 남과 북의 생명이 함께 위태롭다. 자연은 인간에게 경쟁보다 공존을, 대립보다 협력을 요구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문명은 더욱 낮아지고 다소곳해져야 한다.


강기슭에서 한 도인을 만나 차를 마시며 청담을 나누었다. 차향이 오르고 빗소리가 깊어지는 동안, 세상의 근심과 인간의 앞날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머지않아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말도 나누었다. 꿈같고 취중담 같은 이야기였지만, 때로는 현실보다 꿈이 더 오래 사람을 지탱한다. 현실이 어둡기 때문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며칠 전 압록산인과 주고받은 화답시의 정조 또한 이 장맛비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비는 압록강에 가득 내리고

안개는 하늘까지 자욱하지만,

함께 큰 도를 논한 뜻은

끝이 없어라.

훗날 누군가

우리의 만남을 묻는다면,

마음은 늘

푸른 산과 푸른 강물 사이에 있다고 하리라."

비와 안개가 강과 하늘을 가려도 함께 논한 도의 뜻은 끝이 없다는 말은, 오늘 이 강기슭에서 나눈 청담과도 이어진다. 


사람의 만남은 한때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뜻이 깊으면 만남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마음의 강물이 되어 오래 흐른다. 훗날 누군가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를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마음이 청산과 벽수 사이에 머물렀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가 내려 산빛이 흐려지고 강물이 탁해져도, 마음속 청산과 벽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맛비 내리는 압록강의 저녁은 그렇게 깊어 간다. 


그러나 구름이 영원히 하늘을 덮을 수는 없다. 장맛비가 그치면 강물은 다시 맑아지고, 보이지 않던 달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썩고 병든 것들을 씻어내는 비처럼, 시대의 묵은 갈등과 분단의 상처도 언젠가는 씻겨 내려가기를 바란다. 사람과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고, 기다리던 이가 돌아오며, 남과 북이 다시 한 강물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사람이 세운 경계보다 오래,

인간이 만든 이념보다 깊게.

그리고 그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나는 다시 믿어 본다. 비록 지금은 천둥과 먹구름뿐일지라도, 강 건너 어딘가에서는 이미 새로운 시절의 작은 빛이 밝아오고 있음을.(26.7.15.압록강변에서 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