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공이 쓴 발해고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반도에만 한정되게 된 것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넣지 않아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이면 고구려 다음으로 발해의 역사를 통일신라의 역사와 같이 기술을 해야 하는데, 삼국사기라고 하면서 발해사를 빼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만주의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 역사에서 통일된 역사가 한번뿐이라고 하면서, 신라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는 백제만 통일시키고, 나머지 고구려땅은 그대로 발해로 이어져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발해의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는 그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평가받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이번 발해 역사 탐방에서 느낀 것은 중국은 절대로 발해의 역사를 한국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에게도 발해의 역사 현장을 잘 보여주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발해의 역사를 뺏기면 만주의 역사를 뺏긴다는 절박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발해의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고,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도 않다. 대조영에 의하여 229년이나 계속된 만주의 역사이고, 고구려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인데도 관심이 없다.
송기호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발해를 많이 연구하신 교수님이시다. 여행을 하면서 송기호 교수님의 책을 읽었고, 송교수님마저 중국의 발해 현장에 갔을 때에 일본인 행사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본 발해의 유적은 정혜공주묘가 있는 환구, 상경성이 있는 부지, 동경성, 연해주의 발해성, 환구에 있는 발해박물관 정도였다. 발해는 5개의 수도를 둔 체제였다. 상경성을 비롯한 동, 중, 서, 남경까지. 한반도에는 북청이 남경으로 발해의 흔적이 있다. 발해의 영토 안에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목단강, 우수리강이 있어서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러한 경제력으로 오랫동안 만주의 주인으로서 통치를 한 것이다. 특히 홍개호 주변은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의 곡창지대로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발해 역사 열풍이 불었던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내부 반란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면 만주족이 다시 만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만주족을 대해야 할 지에 대하여 정조때부터 논란이 되었다. 영정조때 조선 선비들은 청나라가 100년을 못 갈 것으로 생각한 때였다. 만주족이 만주에 오면 변경이 시끄러워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방을 방비하거나 수복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유득공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발해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우리 땅임을 밝히고, 돌아올 만주족에게 그 근거를 제시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만주족은 망하지 않고 그로부터 100년은 더 지탱하였다.
발해에 흡수되지 않고 버틴 말갈족이 있다. 그것은 흑수말갈이다. 그들은 지금의 하바로프스크를 포함한 아무루 상류지역에 살던 말갈족이다. 흑수말갈은 당나라와 협조하면서 발해를 위협했다. 당나라는 이이제이의 방식으로 발해를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 당나라는 신라에게 후방에서 발해를 치라고 주문하기도 했으나 신라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발해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문화였지만, 흑수말갈은 가장 말갈족의 분위가 많이 남아있다. 이번 하바로프스크 박물관에서 흑수말갈의 생태습관을 보니 거의 수렵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부족이었다.
연해주가 있는 러시아에서도 발해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러시아의 연구는 중앙아시아와 발해의 관련성에 대한 것이 많다. 특히나 실크로드의 주역인 소그드인의 유물이 발해지역에서 발견되어 실크로드가 발해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구르족의 일부가 키르키스인들에게 망하자 상당수의 피난민이 발해로 오기도 했다. 그래서 발해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발해는 일본으로 자주 사신을 보냈는데 그 지역이 포시에트라는 곳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크라스키노 부근은 솔빈부가 지배했던 곳인데 이곳은 명마로 유명하여 거란이나 이정기의 나라에도 수출했다고 한다. 발해성이 있던 지역에서 말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 바로 그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발해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는지 판단했으면 좋겠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연구를 통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해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주변국과 교류하면 번창했던 나라라는 점을 기억하자.
2026. 8. 6.
걷는 변호사 조용주
유득공이 쓴 발해고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반도에만 한정되게 된 것이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넣지 않아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이면 고구려 다음으로 발해의 역사를 통일신라의 역사와 같이 기술을 해야 하는데, 삼국사기라고 하면서 발해사를 빼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만주의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 역사에서 통일된 역사가 한번뿐이라고 하면서, 신라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는 백제만 통일시키고, 나머지 고구려땅은 그대로 발해로 이어져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발해의 역사를 잃어버린 우리는 그 역사가 중국의 역사라고 평가받는 현실을 보고 있다. 이번 발해 역사 탐방에서 느낀 것은 중국은 절대로 발해의 역사를 한국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에게도 발해의 역사 현장을 잘 보여주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발해의 역사를 뺏기면 만주의 역사를 뺏긴다는 절박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발해의 역사에 대하여 잘 모르고,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도 않다. 대조영에 의하여 229년이나 계속된 만주의 역사이고, 고구려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인데도 관심이 없다.
송기호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발해를 많이 연구하신 교수님이시다. 여행을 하면서 송기호 교수님의 책을 읽었고, 송교수님마저 중국의 발해 현장에 갔을 때에 일본인 행사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본 발해의 유적은 정혜공주묘가 있는 환구, 상경성이 있는 부지, 동경성, 연해주의 발해성, 환구에 있는 발해박물관 정도였다. 발해는 5개의 수도를 둔 체제였다. 상경성을 비롯한 동, 중, 서, 남경까지. 한반도에는 북청이 남경으로 발해의 흔적이 있다. 발해의 영토 안에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목단강, 우수리강이 있어서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러한 경제력으로 오랫동안 만주의 주인으로서 통치를 한 것이다. 특히 홍개호 주변은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의 곡창지대로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발해 역사 열풍이 불었던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내부 반란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면 만주족이 다시 만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만주족을 대해야 할 지에 대하여 정조때부터 논란이 되었다. 영정조때 조선 선비들은 청나라가 100년을 못 갈 것으로 생각한 때였다. 만주족이 만주에 오면 변경이 시끄러워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방을 방비하거나 수복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유득공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발해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우리 땅임을 밝히고, 돌아올 만주족에게 그 근거를 제시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만주족은 망하지 않고 그로부터 100년은 더 지탱하였다.
발해에 흡수되지 않고 버틴 말갈족이 있다. 그것은 흑수말갈이다. 그들은 지금의 하바로프스크를 포함한 아무루 상류지역에 살던 말갈족이다. 흑수말갈은 당나라와 협조하면서 발해를 위협했다. 당나라는 이이제이의 방식으로 발해를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 당나라는 신라에게 후방에서 발해를 치라고 주문하기도 했으나 신라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발해는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문화였지만, 흑수말갈은 가장 말갈족의 분위가 많이 남아있다. 이번 하바로프스크 박물관에서 흑수말갈의 생태습관을 보니 거의 수렵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부족이었다.
연해주가 있는 러시아에서도 발해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러시아의 연구는 중앙아시아와 발해의 관련성에 대한 것이 많다. 특히나 실크로드의 주역인 소그드인의 유물이 발해지역에서 발견되어 실크로드가 발해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구르족의 일부가 키르키스인들에게 망하자 상당수의 피난민이 발해로 오기도 했다. 그래서 발해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발해는 일본으로 자주 사신을 보냈는데 그 지역이 포시에트라는 곳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크라스키노 부근은 솔빈부가 지배했던 곳인데 이곳은 명마로 유명하여 거란이나 이정기의 나라에도 수출했다고 한다. 발해성이 있던 지역에서 말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 바로 그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발해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는지 판단했으면 좋겠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연구를 통하여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해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주변국과 교류하면 번창했던 나라라는 점을 기억하자.
2026. 8. 6.
걷는 변호사 조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