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몽골제국의 쿨리코보 전투 - 몽골에 대한 러시아 최초의 승리

알렉세이 정
2026-07-14

1380년 9월 8일 돈 강변의 쿨리코보 벌판에서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와 각 러시아 공후들 15만의 러시아 연합군이 킵차크 칸국의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모여들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마이 칸은 20만의 킵차크군을 이끌고 벌판을 가운데 둔 상태에서 서로 대치했다. 정오 쯤 되었을 때 짙은 안개가 걷히자 킵차크 칸국의 주력인 킵차크 기병대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러시아군을 분할하여 곳곳에 개울이 흐르는 얕은 구릉지대에 산개해 진을 치게 하고 있었다. 빠른 경기병인 킵차크 기병대를 주축으로 하는 몽골군의 예봉을 꺾기 위한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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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쿨리코보 전투 승리를 기념하여 위해 지어진 성당,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전 1369년부터 1376년까지 발생한 7년 전쟁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몽골군에게 전쟁에서 대패한 바 있었다. 이러한 패배에 대해 상당한 연구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선 진지를 산개하여 경기병 대의 산개를 기다린 다음 몽골군 본대가 들어오기까지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이에 몽골군은 산개해 있는 러시아 군을 간단히 포위하지 못하고 러시아 군 진지 안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와야 했다. 그러자 산개해 있던 러시아 군 사이에 중앙군인 모스크바 소속의 보병대가 난입하여 주력군들과 백병전이 벌어졌다. 


이는 산개한 다른 러시아 공후의 병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역시 산개된 몽골의 경기병들을 각개 격파하는 형식으로 하여 몽골의 최대 장점인 기동성을 묶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진지에서 돌격해 들어가는 몽골군을 맞아 치열하게 백병전을 벌여야 했다. 오후 3시경 양편 군대 모두 태반이 죽고 남은 병사들도 탈진했다. 그 때 숲속에 매복해 있던 러시아의 공후들의 부대가 산개된 몽골의 경기병들을 각개 형식으로 제압해 나갔다. 산개된 몽골의 경기병들은 러시아군의 소규모 밀집 대형에도 쉽게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몽골의 경기병들을 모두 제압한 러시아 공후들의 부대가 몽골의 본대를 포위하여 공격해오자 마마이 칸과 남은 몽골 병사들은 포위망을 뚫고 대거 도주하고 말았다. 이 전투가 그 유명한 쿨리코보 전투로 러시아가 몽골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승리한 첫 사례라 볼 수 있다. 전투는 몽골군의 대 참패로 끝났으나 러시아 연합군의 피해도 컸기 때문에 군대의 절반 이상을 잃어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하기에는 불가능했다. 이 전투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 자신도 전투 중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전투가 끝난 후 많은 전사다들 속에서 걸어 나왔고, 전쟁터에서 치른 장례식만도 8일이나 걸렸다. 


킵차크 한국과 동맹을 맺은 리투아니아의 군대는 이틀 후에 돈 강에 도착했으나 그때는 이미 모든 전투가 끝난 뒤였다. 그들은 군대를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이 전투로 인해 몽골-타타르는 러시아에서 첫 패배를 당했고, 러시아는 처음으로  몽골과 타타르를 상대로 승리하여 몽골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러시아 연합군의 중추 역할을 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권위는 크게 높아졌고,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사후, 러시아 정교회에 의하여 성인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돈스코이라는 별칭도 이 전투를 기점으로 얻은 것으로, “돈 강의 승리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그로부터 1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는 이 전투에서 비록 패했다 할지라도 몽골의 세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킵차크 칸국 본토에 남아 있던 몽골군의 주력도 여전히 많았던 것이다. 2년 후인 1382년에 토크타미슈(Toktamishu) 칸이 다시 10만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하여 시가를 불태우고 재물을 약탈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모스크바 수성전에서 패배하여 킵차크 칸국의 칸을 대군주로 섬기지 않을 수 없었고, 대칸은 드미트리 돈스코이를 모스크바의 대공으로 승인했다. 그러나 쿨리코보 전투 이후 몽골의 지배는 그 전과 같은 강력함이나 잔혹한 학정이 없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1389년에 죽었을 때 그의 아들 바실리는 킵차크 칸의 승인 없이 대공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 많은 러시아 공후들이 때때로 조공을 선물로 대신했다.


150년간이나 러시아를 지배해 온 킵차크 칸국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같은 유목민족이 세운 나라인 티무르 제국이었다. 제국의 창건자 아미르 티무르는 1368년 중국 대륙에서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가 멸망한 직후,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칭하며 몽골 제국 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북부, 카프카스 지방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러한 티무르 군은 1391년 킵차크 칸국을 공격하여 수도 사라이를 유린하고 제2의 도시인 라잔까지 초토화시킨 뒤 철수했다. 티무르 군이 철수한 후 킵차크 칸국은 다시 재건에 성공했으나 그 여파로 인하여 칸국 내의 내분이 격화되었다. 15세기에 들어 크림, 카잔, 아스트라한의 3개의 칸국이 킵차크 칸국에서 분리 독립하자 킵차크 칸국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1452년에는 킵차크 칸국 내에서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다. 모스크바 대공의 지배를 받는 몽골인 군주가 카시모프(Kasimov) 공국의 공위에 오른 것이다. 더불어 많은 몽골 귀족들이 모스크바 대공에게 복종을 서약했다. 이를 계기로 모스크바 대공국과 킵차크 칸국의 관계는 사실상 역전되었다. 킵차크의 칸은 이를 전후하여 모스크바를 다시 자기 지배하에 두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만다. 몽골의 러시아 지배는 몽골족이 러시아를 침략해올 때나 쿨리코보의 결전에 비하면 매우 쉽게 멸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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