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알혼 섬의 부르칸 바위와 게세르 칸

알렉세이 정
2026-08-04

부르칸 바위와 개천(開天)의 경이로운 풍경을 보자면 마치 하늘길이 열리며 환웅이 3천 무리와 풍백, 우사, 운사를 이끌고 구름길 타고 강림한 듯 하다. 이곳이 우리 민족이 태어난 샤먼 바위, 게세르칸이 하늘 사이로 구름을 타고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강림했다는 그곳이다.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는 사르후순 바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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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알혼 섬의 부르칸 바위의 노을,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카르모(캉가리)는 게세르에게 명하여 인간 세상을 다스리라 하여 그를 도울 3,000명의 무리와 3명의 신하를 데리고 지상에 내려오라 했으니 내려온 곳이 카르막(Karmak)이다."


<게세르>는 티베트와 몽골 민족 사이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영웅서사시로 <장가르>, <마나스>와 함께 중앙아시아 3대 서사시로 꼽힌다.  <게세르>의 시원을 따진다면, 티베트어 <게세르>가 먼저 형성되었고, 그것이 몽골에 전래되어 몽골어 <게세르>로 다시 창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티베트에서는 <게사르>라고도 부른다. 동북아시아 초원지대를 대표하는 영웅 서사시로서, 남쪽으로는 갠지스 강 유역, 북쪽으로는 바이칼 호수까지 퍼져 있을 만큼 전승범위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몽골인들은 <게세르>를 <몽골비사>, <장가르>와 함께 몽골을 대표하는 3대 전통문학으로 간주한다. 신성한 부리야트의 12개 기둥 (Селге, 세르게), (일명 13기둥) 게세르 칸이 강림했을 때 그의 아들 12명이 이곳에 각 부족을 통치해서 12개 종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3기둥이라 한다. 부리야트 신화에는 게세르에게 본래 12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막내아이는 화하족으로 추측되는 자들인 챠카(Цяка)족이 침공해와 부족이 약탈 당하고 아직 어린 막내 아이는 챠카 족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챠카 족에 대해 연구한 러시아-몽골의 신화학자들은 이들이 중국의 원(原) 민족으로 분석했다. 그래서 당시 중국의 원(原) 민족이면 화하라고 생각하여 나는 화하족으로 추측했던 것이다. 실제 신화학자들은 이들이 정확히 어떤 민족인지 묘사하지 않았다. 게세르가 챠카인과 전쟁을 벌이다 장남인 Индука (인두까)가 멀어지게 되었고 나이 어린 Индука (인두까)는 챠카족을 피해 서쪽으로  도주했다 한다. 인두까는 암늑대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해 서쪽 유목민의 제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 신화를 잘 아는 부리야트 인들은 인두까가 Хун (훈)족의 조상일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과 떨어진 곳에 그의 기둥을 마련했다. 


13기둥에는 샤먼 행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술울 붓고 동전을 쌓고 음식도 올린다. 그 흔적들이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샤먼들이 12신이라 불리는 게세르 아들들의 신기를 받으면 신에 들린다 하던데 그래서 그 영감을 받은 샤먼이 죽으면 기둥이 하나씩 추가 된다고 한다. 게세르가 3.000 무리와 바람과 구름, 비를 다스리는 삼신(三神)과 함께 강림한 바위 근처를 배경으로 보면 꽤 괜찮은 풍경이 나타난다. 하늘의 Кахан (까한)이 Каин (까인) 에게 무리를 주고 세상을 평정하라 하니 다수의 무리와 곰의 정령, 늑대의 정령, 사슴의 정령을 데리고 강림한 카인은 이곳에서 거대 나무에 세상을 통치할 것을 선포한 퉁구스 민족 창세 신화 등, 서로 비슷한 신화들이 구전되어 내려온 곳이다. 


우리 환웅 신화도 여기서 출발했다. 게세르나 퉁구스의 구전에서 내려온 그 이야기는 우리 환웅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부리야트 인들도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웅 신화를 알고 있더라는 얘기다. 왜냐면 부리야트 인들이 말하는 게세르 이야기에 포함되는 나라 중에서 Кареи (한국)이 항상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환웅 신화와 유사한 게세르 칸 강림 신화를 보자면 우리가 <게세르> 신화에 주목하는 까닭은 비단 웅장한 서사와 그것을 환상적으로 전개하는 스토리텔링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게세르>가 우리 민족과도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바이칼의 게세르신화』를 옮긴 양민종에 따르면 게세르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신화와 닮은꼴이고, 한반도에서 면면히 생명력을 이어온 샤머니즘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이 <게세르>에 관심을 갖고 소략하게나마 신화소(神話素)를 분석한 바 있는데, 이 역시 <게세르>가 우리 민족의 신화, 특히 단군신화와도 일정하게 맥락을 같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928년에 발표한 논문 「단군신전(神典)의 고의(古義)」(동아일보, 1월 1일~1월 12일)에서 한반도의 문화가 중국의 한족문화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는 이른바 ‘만몽(滿蒙) 문화론’을 전개했다. 


최남선은 몽골의 게세르 칸 서사가 단군신화의 공백을 메워주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이 때 그는 부리야트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게세르를 ‘께실 복도’로 표기한다. 또한 육당은 1939년 만선일보에「몽고천자(蒙古天子)」라는 제목으로 <게세르> 신화를 우리말로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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