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 존립하고 있는 조호르 술탄국 이야기

알렉세이 정
2026-08-05

말라카 술탄국이 서양 열강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에 왕자였던 알라우딘 리얏 샤는 조호르로 피난했다. 그는 그 땅에 새로운 왕국인 조호르 술탄국을 건국했다. 그는 하인들의 직급을 높게 하고, 그 지역의 사람들을 백성으로 받아준다. 건국 초기는 순조로웠지만 건국한 지 6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멸망 위기를 겪게 된다. 바로 포르투갈하고 아체 술탄국과의 삼각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이 당시에 믈라카를 지배하고 있었고, 아체는 말레이 반도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처음 포르투갈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다만 운 좋게도 영토의 일부를 할양하는 선에서 멸망을 피했다. 그 다음으로 아체와의 전쟁에서는 아체의 침략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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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말레이시아(당시 말라야 연방) 조호르주 신산(Johor Bahru)에서 열린 조호르의 제22대 술탄 이브라힘(Sultan Sir Ibrahim ibn Abu Bakar)의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 및 82세 대동화탄(생일) 겸임 축하 행사의 역사적인 장면, 출처 : Facebook·JOHOR Southern Tigers


당시 잠비는 수마트라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조호르는 왕자를 잠비의 공주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왕자는 공주의 성격이 맘에 안들어 결혼을 안한다. 그리고 술탄은 이걸 조호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잠비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전쟁은 조호르가 득세였다. 그후에 조호르는 시악 술탄국이 되는 리아우 영토를 얻는다. 조호르술탄국은 현재도 존재하는 말레이시아 유일의 술탄국이다. 17세기는 조호르에게 황금기였다. 이때 조호르는 이슬람 학문을 발전 시키고 사회에 유용한 기술도 발전시킨다. 결과 조호르는 경제력이 크게 뛰어오른다. 17세기 중반에는 리아우 제도, 싱가푸라(싱가포르) 등의 영토를 획득했다.


19세기에 들어 조호르는 대영제국,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흡수될 위기에 처한다. 그 결과 1855년에 서약을 해 영국령이 된다. 다만 남부인 리아우 제도는 따로 독립하여 리아우 링가 술탄국이 된다. 현재는 조호르 주가 술탄국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조호르바루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의 시기에 그 이름을 줄여 툰쿠라고 불리며, 말레이시아가 독립한 직후 집권하였다. 종종 말레이시아 독립의 아버지(Bapa Kemerdekaan), 또는 말레이시아의 아버지(Bapa Malaysia)로 불린다. 1957년 독립 후 초대 총리에 취임했으며 1970년까지 총리 직위에 있었다. 1903년 알로르스타르에서 압둘 하마드 할림 샤흐와 체 만잘라라의 자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16세에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하였으며 영국의 통치 하의 사회에서 농민들이 떠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알게 된 후 독립 운동을 시작했으며,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1950년대 초 다토 온 자파르가 이끌던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 참여하였고, 그는 차츰 독립 운동의 주도자가 되었다. 1957년 말라야 연방의 독립 이후 초대 총리에 취임했으며, 이어 1959년 총선에서 UMNO가 ⅔를 넘는 의석을 차지해 사실상 일당체제를 구축했다. 말레이인 인종주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인종의 평등을 주장했으며, 이에 말레이인들의 반발을 사자 말레이인 우대로 전환했다. 한편 1963년 싱가포르, 사바, 사라왁을 편입해 말레이시아를 출범시켰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인종 문제로 탈퇴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그는 인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1969년 5·13사건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됐고, 계엄령을 선포한 뒤 절대적인 독재자가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총선에서 UMNO는 참패하였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총리직을 사퇴했다. 퇴임 후에도 은은한 영향력을 가졌다. 현재 조호르에서 군림하는 왕가는 트믄공 왕조로 조호르 술탄국 때부터 군림해 왔다. 현 술탄은 이브라힘 이스마일으로 2010년에 즉위했다. 부왕인 이스칸다르 샤가 붕어한 뒤 술탄 자리를 계승했다. 참고로 모계가 영국인 혼혈이다. 다른 주의 왕실에 비해 조호르 왕실은 여러가지 불명예를 안고 있다. 가령 선왕 이스칸다르 샤가 살인죄에 연루된 적이 있었고, 왕자인 툰쿠 압둘 잘릴이 2015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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