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찐 왕조에서 대만 정씨 왕조까지, 바다를 건넌 정씨 가문의 역사

알렉세이 정
2026-09-01

대만의 정씨 왕조는 4대에 걸쳐 대만에서 청나라와 항쟁하는 역사를 지녔는데 정성공의 선조들에 대한 언급은 중국 역사에서 찾기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답은 越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보니 解讀新發現的鄭成功族譜,『廈門晚報』,2002年, 6月 30日 것을 보니 "先祖是鄭榮, 父是鄭瑢(西庭,另一說鄭王容), 父是鄭士表(另一說鄭紹祖),字毓程,號象廷,福建泉州府南安石井鄉人." 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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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주(Hsinchu)시 북구 베이먼가(北門街)에 위치한 시 지정 고적 신주 정씨가묘(新竹鄭氏家廟, Hsinchu Zheng Family Temple),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즉, 정영(鄭榮)이 그 가계의 시조라는 것이다. 정성공의 정씨는 복건이 토종이 아닌 정성공의 조부인 정사표(鄭士表) 대에 이주했다는 것이다. 정영(鄭榮)은『越南通史』에 의하면 베트남 후 레 왕조의 외척 정씨(鄭氏) 정옥창(鄭玉蒼) 가문의 4대 손으로 나오는데 정검(鄭檢)과는 사촌 간으로 나와 있다. 이 가계가 좀 복잡한데 앞서 언급한 것을 세세히 밝혀보도록 한다. 베트남 후 레 왕조의 외척 정씨(鄭氏) 정옥창(鄭玉蒼)은 명나라를 격파한 뒤 베트남 후 레 왕조를 건국했던 베트남의 대표적 영웅 레 로이(黎利)의 모친이다. 


그녀는 레 로이가 후 레 왕조를 건국하자 정자황태후(Trinh Từ Hoàng thái hậu, 貞慈皇太后) 로 추존된다. 이후 그녀의 가문은 후 레 왕조의 정사에 합류하게 된다. 레 로이의 정실 황후인 공자황태후(Cung Từ Hoàng thái hậu, 恭慈皇太后)가 1425년 사망하자 레 로이는 다시 황후를 세워야 하는 상황으로 나타나게 되자 자신의 어머니 가문인 정씨(鄭氏) 가문의 정옥창(鄭玉蒼)의 고종사촌 정류(鄭柳, Trịnh Liễu)의 딸인 정옥여(鄭玉呂, Trịnh Thị Lữ)를 황후로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신비(Thần phi, 宸妃) 라고 불리며 레 로이의 정실이 된다. 


레(黎)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가? 치우천왕이 다스렸던 구려국(九黎國)의 후예로써 상고시대 황제헌원과 전쟁 이후, 묘족과 함께 남하했던 동이족의 일족이었다. 필자는 베트남 연구하면서 누누히 말해왔다. 黎족은 치우제를 지내고 그 여족의 중시조가 전 레 왕조를 건국했던 레 호안(黎桓)이고 두 번째 중시조가 후 레 왕조를 건국했던 레 로이(黎利)라고 말이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해양 역사고고학 연구소가 베트남 타이빈(太平) 레 로이(黎利) 마을에 있다고 말이다. 그 레 로이와 정씨(鄭氏)는 그렇게 인연이 된다.


대만의 정씨 왕조와 레 로이의 인연을 설명했는데 이 인연과 베트남 찐(鄭) 왕조, 그리고 정성공 가문과의 인연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정류(鄭柳, Trịnh Liễu)는 태국공(太國公) 정검(鄭檢, Trịnh Kiểm)의 증조부인데 그가 베트남의 후 레 왕조의 분열기의 북쪽 왕조를 담당했던 찐 왕조(鄭王朝)의 시조인 鄭 世祖(1545년~1570년)가 되는데 당시는 후 레 왕조가 분열의 시기로 북방의 찐(鄭) 왕조와 남방 막(莫) 왕조로 갈라져 있었다. 이 찐(鄭) 왕조는 상권이 매우 뛰어나 국가 자체의 경제를 육, 해상 상업에 주로 종사시켰는데 정지룡의 아버지인 정사표(鄭士表)가 찐(鄭) 왕조의 황족으로써 복건으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사표(鄭士表)의 고향이『台灣外紀』에서는 교지국(交趾國)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어 정지룡의 가문이 본래 해적 출신이 아니라 베트남 중세 왕조인 찐(鄭) 왕조의 황족인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정사표(鄭士表)에게서 1604년 정성공의 아버지인 정지룡이 태어났고 정지룡은 광동, 대만, 복건, 광서, 북베트남에 이르기까지 해상상권을 장악했으며 멀리 유구국, 일본까지 왕래했던 거상(巨商)이자 해적으로 활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명 남중국 바다의 왕자라 불리기도 한다. 정성공의 부친 정지룡은 이단의 상단에서 대만과 중국 해안을 연결하는 무역을 맡았다. 중국 해안에서 교역항을 찾던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의 마카오를 침공했지만 실패했고, 정지룡을 통해 명나라 조정에 항구 하나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명나라 조정과 네덜란드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중재한 정지룡은 네덜란드에게 중국 해안은 불허하니, 대만에 가서 요새를 짓고 무역항으로 활용하라고 권한다. 이후 네덜란드가 1624년 대만 타이난(臺南)에 요새를 지으니, 젤란디아 요새(Fort Zeelandia)다. 이 곳은 나중에 정지룡의 아들 정성공이 점령해 왕국을 세우고 수도로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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