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의 남방 정복에서 남월 건국까지, 광저우를 만든 조타의 시대

알렉세이 정
2026-09-12

광저우는 남월(南越) 무제(武帝) 조타가 주로 활약한 지역이다. 조타가 등장한 배경을 보면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머지를 5국을 병탄했다. 이후 양월(楊越)이라 부르는 지역인 지금의 광서성, 광동성 일대의 영남(嶺南) 지역을 공략하여 평정시킨 뒤에 그곳에 계림군(桂林郡), 남해군(南海郡), 상군(象郡)을 설치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켜 월(越)나라 사람들과 섞여 거주하게 함으로써 서로 견제허여 반란 도모를 봉쇄했다. 그리고 시황제는 백월 정벌에 공을 세운 임오(任悟)를 남해군위(南海郡尉)에 임명헸고 조타(趙陀)는 남해군의 용천현령(龍川縣令)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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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 광저우에 위치한 역사적인 명소인 서한남월왕박물관(西汉南越王博物馆, Museum of the Mausoleum of the Nanyue King)의 정문 입구,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시황제가 조타를 남방 원정에 참전시킨 것과 더불어 그를 남방의 일개 현령으로 임명한 것은 옛 조나라 세력들의 반기를 누르고 그들이 흉노와 동호 같은 북방 유목민족들과 동맹하여 북방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측면도 있다. 조타와 임오는 남중국을 평정하고 설치한 남해(南海) · 계림(桂林) · 상(象)의 3군(郡)을 이용하여 멀리 운남과 귀주 지역에 대하여 대대적인 원정에 나섰다. 마침 북베트남과 운남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어우락 국은 안 즈엉 브엉이 통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운남 북쪽, 사천 남쪽 지역에는 미얀마 계열인 몬족이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몬족의 추장인 아리타(阿里他)가 죽은 후 운남 지역에서 대규모 내란이 발생하자, 남해군위(南海郡尉) 임오와 용천현령(龍川縣令) 조타는 B.C 211년에 운남성 일대를 공략하여 대규모 정벌에 성공하고, 운남 몬족의 멸망과 함께 이들 지역을 계림 · 상의 2군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이어 어우락 국을 공격하고 안 즈엉 브엉을 홍강(洪江)의 하내(河內, 오늘날의 하노이)까지 따라가며 격퇴하여 그의 북진을 저지했다. 이후 진나라의 두 장수가 남중국을 정복한지 13년 이후, 조타(趙陀)는 남해군의 용천현령(龍川縣令)에서 상(象)군 태수에 임명되었다. 진나라의 2세 황제 때에 남해군위(南海郡尉) 임오(任悟)가 병이 들어 임종 직전에 용천현령 겸 상군태수인 조타를 불러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진승(陳勝)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들었다. 진나라가 포학무도한 정책을 추진하여 천하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니 항우(項羽), 유방(劉邦), 진승, 오광(吳廣) 등이 각자의 주군(州郡)에서 민중을 모아서 군대를 만들어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중이다. 중원이 동란으로 인하여 혼란에 있어 언제 안정될지 알 수 없다. 호걸들은 진나라를 배반하고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비록 남해군은 중원과 떨어진 곳으로 멀리 있지만, 나는 진승 등의 도적의 군대가 남해를 침범할까 두렵다. 그래서 내가 군사를 동원하여 중원과 연결되는 길을 끊고 스스로 방비 태세를 갖추어 제후들의 변란에 대비했는데, 공교롭게도 나의 병이 심해졌다. 또한 이곳 반우(番遇) 지역은 험준한 산세를 등지고 남쪽으로 바다기 지나가며 동서의 길이가 수 천리에 달합니다. 그리고 일부 중원 백성들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자들이 있으니, 이곳 또한 한 지방의 중심지로 삼아서 나라를 세울 만하다. 군(郡) 안의 장리(長吏) 중에 더불어 이 일을 도모할 자가 없기 때문에 공을 불러서 부탁하는 바이다.”


이후 임오는 조타에게 임명 조서를 주어 남해군위의 직무를 대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임오가 사망하자, 조타는 횡포(橫浦), 양산(陽山), 황계관(湟谿關)에 격문(檄文)을 돌려 이렇게 고했다. 


“장차 강도(江都)의 군대가 침입하려고 한다. 신속하게 도로를 차단하고 병력을 모아 스스로 방어하도록 하라.” 


B.C. 209년 조타는 남해, 계림, 상군 등 3개의 군을 모두 장악하였고 장기간의 폭정 등의 이유로 진나라가 임명한 관리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우의 서초(西楚)가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군하였을 때 동월(東越)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타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가며 동월을 공격한 원정으로 중원 남부 지역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B.C. 208년 복주(福州)태수인 강화지(姜畵持)는 중병을 얻자 복건의 군대를 모두 조타에게 항복시키고 본인 스스로도 조타를 불러 복주태수의 인장(印樟)을 넘겨주며 중원으로부터 반란군의 침입을 막도록 지시하고 그를 복주태수의 직무를 대행하게 하였다. 


이후 복주태수는 사망하고 조타는 요새를 수비하며 한편장강 북쪽에서 넘어오는 반란군과 진나라 토벌군을 격퇴하고 B.C. 207년 강소성과 절강성 부분까지 유린했다. 그리고 B.C. 206년에는 귀주와 호남, 호북성 일대마저 정복하고 백월이 영위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탈환하여 본거지인 남해로 돌아왔다.조타는 B.C 206년 진나라가 항우와 유방의 협공으로 함양이 함락당하며 멸망하자 이를 기회로 삼아 진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을 점차적으로 회유와 처단을 거듭하고, 자기 당파의 사람을 대리 관리로 삼았다. 조타는 안휘성과 강서성을 일대를 다시 공격하여 합병하고, 광서, 광동, 북베트남, 운남, 귀주, 복건, 절강, 강소, 강서, 안휘, 호북, 호남성 일대를 대통합하여 남월(南越)을 건국했다. 그리고 그는 B.C 203년 황제에 즉위했고 이 황제가 된 조타를『史記』에서는 무왕(武王)이라 하였고『大越史記全書』에서는 무황제(武皇帝), 묘호는 태조(太祖)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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