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칼라와 히바칸국, 러시아의 원정

알렉세이 정
2026-09-15

차르 니콜라이 1세는 페로프스키에게 히바 원정 준비를 지시했다. 120년 전의 원한도 풀고 영국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로 북상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전쟁의 대외명분으로 러시아인 노예 석방을 들었다. 당시 히바에는 상당수의 러시아 시민들이 잡혀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명분은 영국도 반대할 수 없었다. 군사로는 보병과 기병, 포병 등 5천 명이 모집되었다. 용맹한 코사크 부대도 참가시키고, 탄약과 장비를 수송하기 위해 낙타 1만 마리를 동원했다. 페로프스키는 120년 전 원정대가 여름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고생한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초겨울을 선택했다. 


0bf1d80eb893c.png

Khanate of Khiva, 출처 : Royal Geographical Society (RGS) , 1875


초겨울에 출발해 혹한이 다가오기 전에 히바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11월 26일 첫 번째 부대가 출발한 이후, 순차적으로 부대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12월이 되면서 눈이 오기 시작했으며 심한 폭설이 자주 내렸다. 러시아 병사들은 자신들의 키가 넘게 쌓여 있는 눈을 치우며 행군했다. 이어 추위도 동반해 찾아왔으며 그로 인해 낙타들이 하루에 100마리 이상이 죽어갔다. 1월 초가 되자 낙타가 절반 이상 죽고 없어졌다. 게다가 대포를 끌고 갔기 때문에 전진이 어려웠다. 1월 말에는 병사 200명 이상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그 이상의 병사들은 동상에 걸려 전투능력을 상실했으며 이들의 하루 행군 속도는 몇 km에 불과했다. 더불어 2월에 접어들면서 지휘관들 사이에서 전진을 중단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페로프스키도 부대 상황을 점검한 끝에 2월 13일 철수를 명령했다. 러시아 군은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기후로 인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전투를 벌여보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철수도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퇴각하는 상황에도 병사들은 추위에 시달리고 괴혈병에 걸려 죽어 나갔다. 부대는 출발한지 7개월 만에 오렌부르크 부대에 돌아왔다. 제대로 전투를 벌이지 못한 채 1,000명 이상의 병사가 사망했고, 낙타는 90% 가량 상실했다. 물론 러시아인 노예는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두 번째 원정이 실패했다는 소식은 히바에 비교적 늦게 알려졌다. 히바 인들은 눈 속에 러시아 군이 행군해 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사막의 대상들이 키질쿰 사막의 행군로에서 죽어간 낙타와 러시아 군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히바의 칸도 알게 되었다.


1840년 1월 말, 러시아의 계속된 원정의 실패를 알게 된 영국 동인도회사는 특사로 제임스 에벗(James Abbott) 대위를 히바에 파견했다. 이 무렵, 히바의 칸도 러시아 군이 기후 때문에 철수한 사실을 확인하고, 날씨가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히바로 침공해 올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영국군 장교를 만나 주었다. 제임스 에벗 대위는 히바의 칸에게 러시아의 침공 구실을 없애기 위해 러시아인 노예 석방을 제시했다. 칸은 이러한 제임스 에벗을 활용하기로 했다. 칸은 러시아가 오렌부르크에 억류하고 있는 히바인 인질을 돌려보내기로 약속하면 러시아 노예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에벗 대위에게 러시아 차르를 만나 외교적 중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제임스 에벗 대위는 협상의 조건으로 선별한 러시아인 노예 몇 명을 데리고 러시아의  차르를 만나겠다며 국경도시 오렌부르크로 갔다. 한편 제임스 에벗 대위를 히바로 파견한 헤라트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 본부에서는 제임스 에벗에게서 오랫동안 연락이 없자 혹시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리치먼드 셰익스피어(Richmond Shakespear) 중위를 추가로 파견했다. 셰익스피어 중위가 히바에 도착했을 때 에벗 대위가 오렌부르크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셰익스피어는 에벗보다 더 성미 급한 인물이었다. 그는 히바의 칸을 만나 당장 러시아인 노예를 집합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제임스 에벗을 보내 놓고도 협상이 이루어질지 전전긍긍해 하던 히바의 칸은 셰익스피어의 언사에 따랐다. 일부 노예를 감추고 내놓지 않으려는 귀족들도 있었으나, 칸의 지시로 히바에 억류되어 있던 러시아인 노예 416명 전원을 모았다. 셰익스피어는 히바 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러시아 노예들을 데리고 국경도시로 가서 그들을 러시아 정부에 넘겨주었다. 셰익스피어는 러시아 군영에서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 오렌부르크의 러시아 사령관은 그곳에 억류되어 있던 히바인 600명을 즉각 풀어주었다. 





a6428414d7953.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