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교수의 「道德經이 들려주는 삶의 길」

최은경
2026-06-14

[하이데거 연구 제21집 특별호]

 

「道德經이 들려주는 삶의 길」



박정근 교수의 「도덕경이 들려주는 삶의 길」 논문은 『도덕경』에서 말하는 삶의 길이 ‘자연을 본받아(法自然) 무위자연에 이르는 길’이며, 그 길은 삶의 모든 맛을 근원에서 다시 맛보는 일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삶의 쓴맛, 단맛, 무미건조한 맛 모두 ‘도의 맛’이며, 곧 ‘맛 없음의 맛(無味之味)’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근원적 통찰이라는 내용이다.

 

요약문에 다음과 같은 두 글귀가 나온다.

 

“『道德經』이 들려주는 삶의 길은 自然을 法하여 無爲自然에 이름이다.” 

여기서 자연은 눈에 보이는 외부적 자연에 더해 스스로 그러함, 곧 어떤 인위적 목적이나 조작 이전의 근원적 상태를 뜻한다.

 

“‘爲’, ‘致’, ‘守’는 모두 有爲이지 결코 無爲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 까닭은 ‘爲’, ‘致’, ‘守’가 스스로 그러함-自然-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논지인 이 두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박정근 교수는 노자의 “도를 행하라[爲道]”, “빔에 이르라[致虛]”, “고요함을 지키라[守靜]”는 말을 인용한다. 그는 ‘행함’, ‘이름’, ‘지킴’은 모두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무위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爲’, ‘致’, ‘守’가 모두 스스로 그러함[自然]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면서, 그것들은 겉으로는 유위有爲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이 자연에 있는 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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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 요약

 

1장 머리말에서 박정근 교수는 『도덕경』을 통해 삶의 맛을 제대로 보는 문제에 대해 적었다. 그는 삶을 ‘맛’으로 비유하고, 사람은 단맛 같은 삶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쓴맛, 무미건조한 맛을 더 많이 겪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쓴맛마저 포함하는 것이 삶의 맛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사는 맛이 없다”고 느낀다면서, 삶을 제대로 살아야 삶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삶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제대로 산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p168) 그는 도덕경의 삶에 관한 근원적 통찰을 통해 제대로 된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p169)

 

2장에서 박정근 교수는 도는 알 수 없지만 맛볼 수 있다고 했다.(p170) 그는 여기서 『도덕경』 14장과 25장을 통해 도의 성격을 설명한다. 14장에서는 도를 “보아도 보이지 않고(夷), 들어도 들리지 않고(希),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微)”을(p169), 25장에서는 도를 “하늘과 땅보다 앞선 혼연히 이루어진 것(有物混成 先天地生)”으로 말하며, 마지막에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로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을 제시한다.(p170)


박정근 교수는 여기서 도를 삶의 근원(p170, 10번째줄)이라 해석하면서, 도가 규정할 수 없는 만큼 도의 맛 역시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그는 사과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사과나무의 성향, 토양, 기후, 농부의 수고까지 알아야 하듯, 삶 역시 자신, 삶, 세계, 그 근원까지 통찰해야 한다고 말한다.(p170, 마지막 문단)

 

논문에서 『도덕경』 63장의 “함이 없음을 하고, 일 없음을 일삼고, 맛 없음을 맛보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를 성인의 삶으로 본다. 여기서 "맛 없음의 맛"은 먹기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한 맛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근원적인 맛을 뜻한다. 임법융에 의하면 성인은 도를 맛으로 삼는데, 그것은 맛이 없는 맛이며 그 맛은 지극히 장구하다.(p.173) 박정근 교수가 맛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이 맛없음의 의미가 도 라는 것이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원이라는 점에서 적당한 비유로 본 것 같다. 그 맛은 아무 맛이 나지 않기에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장구하듯, 도道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만물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박정근 교수는 또한 이것을 불교의 일미(一味), 특히 원효의 “無所得之一味”와 연결했다. 이 문장의 의미는 언뜻 보기에 "얻는 것이 없는 한 맛"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뜻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얻고 잃는 분별을 넘어선 경지를 가리킨다. 원효가 말한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 없다[但以無所得故, 無所不得]"는 표현과 같이, 집착적 획득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모든 것에 열리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p.178)

 

박정근 교수의 부모 사랑과 밥짓기 예는 상당히 흥미롭다.(p179) 박정근 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내 자식’, ‘내가 돌보는 사람’이라는 의식에 머물면 사랑은 집착과 소유로 변하지만, 사랑 자체가 될 때는 부모와 자녀라는 대립적 관계마저 희미해지고 사랑만 현존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노자의 도 개념에서 나온 무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무관계란 부모와 자녀, 나와 너 사이가 대립적인 가름의 관계가 아니라는 뜻으로, 가장 깊은 사랑과 일치의 상태를 말한다. 박 교수는 이것을 『도덕경』 56장의 “가까이할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不可得而親, 亦不可得而疏]”와 연결한다.

 

또한 박정근 교수는 사랑 안에서 밥을 지을 때, ‘주부로서의 나’, ‘가족을 위한 행위’, ‘쌀과 물과 밥’이라는 것들이 모두 근원적 차원에서 일치를 이룬다면서 '기막힌 맛이 있다'고 표현한다.(p179) 나라는 집착 없이 자아를 잊은 주부의 밥짓는 행위에서, 사랑 그 자체와 무위자연의 도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읽힌다.

 

논문은 『도덕경』 50장의 “出生入死”를 인용하면서, 보통 삶은 나오는 것이고 죽음은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식물이 땅에서 나와 다시 땅으로 돌아가듯 인간도 삶의 근원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박정근 교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식물의 예를 통해 삶과 근원의 관계를 사유한다. 식물은 땅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뿌리를 통해 여전히 땅과 연결되어 있다. 만약 완전히 떨어져 나온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그러나 뿌리 또한 독립된 근원이 아니라 더 깊은 근원인 땅에 의존하고 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로 삶의 근원과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죽음은 근원과 단절되는 사건이라기보다, 근원으로 돌아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p180~181)


3장의 제목이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이며 이것이 마음을 닦는 공부라 하였다. 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취하지 않아 버릴 것도 없고 얻음이 없어 잃음이 없는 근원적 삶의 맛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덕경』 48장의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세속의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지만, 도를 행하는 일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을 인용하면서, 爲道는 아직 길 위에 있는 순례이고, 無爲는 그 순례의 목적지마저 사라진 자리라고 했다. 순례자는 끝내 모든 땅이 신성하고 신성하지 않은 땅이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 대목에서 부처님의 고행과 깨달음 과정을 연상케 했다.

논문은 원효의 “夫一心之源, 離有無而獨淨; 三空之海, 融眞俗而湛然”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한 마음의 근원은 유무를 떠나 홀로 맑고 깨끗하며, 삼공의 바다는 진속을 원융하여 깊고 고요하다”고 하였다. 박 교수는 노자의 “致虛極, 守靜篤”과 불교의 공, 일심, 일미가 노자의 근원적 통찰의 맛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삶 전체를 순례로 보고, 사람들이 각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목적지에 도착해도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더 큰 욕망이 생긴다면서, 삶은 끝없는 결핍의 순례라 했다. 노자는 이 길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결론에서 박 교수는 『도덕경』 46장의 “知足之足, 常足矣”, “넉넉함을 아는 넉넉함이 늘 넉넉함이다”를 제시하면서, 만족은 외부 조건을 다 채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의 근원적 맛을 아는 데서 생긴다고 하였다. 논문은 『도덕경』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法自然이라 했다. 爲道日損과 致虛極, 守靜篤과 함께, '스스로 그러함'을 누리라는 말로 귀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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