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남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옥에오 유적은 1~7세기의 부남국 관련 유적으로서, 부남국이 백제와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에오 문화는 7세기 동안 베트남과 캄보디아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광활한 지대에서 발달했던 고대 문화를 말한다. 옥에오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운 부남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교역국으로 성장하였다. 옥에오에서는 인근 동남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국, 인도, 로마 등지에서 유래된 외래적인 요소가 강한 문화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멀리 보이는 옥에오 유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옥에오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정착지로서 주민들은 지중해,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원료를 가공해 만든 제품을 수출한 듯하다.그리고 다양한 광물과 가공 도구가 유적 성격을 말해준다. 이어 인도 문자가 있는 화물표, 중국 한나라 청동거울과 로마 황제 금화, 현지에서 세공하거나 수입한 다양한 장신구와 구슬로 당시 활발했던 해상 교역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옥에오 유리구슬은 성분과 형태, 색상 등이 마한·백제 권역에서 나오는 유물과 매우 유사하다.
베트남에서 4세기 이후, 성(城)을 꼬아메(Koame)라고 부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옛 고문자가 베트남어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서 이해바랍니다.) 꼬아메는 한자로 음차하면 고마(固麻)가 된다. 그리고 작은 동네는 탕로이(Than roi)라 하는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하면 승룡(昇龍)이다. 그러나 작은 동네를 승룡(昇龍)으로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탕롱을 승룡(昇龍)으로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뜻의 내용은 아닐것이다. 하노이를 중세 베트남 역사에서 탕롱이라 불렀고 베트남의 역대 왕조들은 이 곳에 수도를 두어 왕궁을 세웠다. 그런 것으로 볼 때는 이미 昇龍은 단순한 읍의 개념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고마(固麻)와 관련해서 이런 문헌을 찾아냈다.
<양서-백제전>에서 말하기를 "성(城)은 “고마”라고 부르고 읍(邑)은 “담로”라고 부르는데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다. 모든 종족의 자제들이 그것에 따라 나뉘어 살고 있다." (號所治城曰固麻謂邑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
여기서 나오는 고마(固麻)는 바로 백제 담로와 관련있는 문구이다. 담로는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耽羅)나 탐모라(耽牟羅)와 같은 낱말을 음차한 것이거나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그 뜻은 나라나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탕로이, 혹은 하노이의 옛 이름 탕롱은 이 내용에 해당된다. 즉 한문 그대로 탕롱을 해석할 때 "승천하는 용" 이지만 승천하는 용과 상관이 없다. 만약에 이것에 벗어난다면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耽羅), 탐모라(耽牟羅) 같은 말도 담로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라나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라는 의미와 탕롱의 위치 및 의미 등에서 보면 매우 유사성이 있다. 따라서 탕롱을 기존의 중국식으로 해석이 아닌 별도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베트남 남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옥에오 유적은 1~7세기의 부남국 관련 유적으로서, 부남국이 백제와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에오 문화는 7세기 동안 베트남과 캄보디아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광활한 지대에서 발달했던 고대 문화를 말한다. 옥에오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운 부남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통로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교역국으로 성장하였다. 옥에오에서는 인근 동남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국, 인도, 로마 등지에서 유래된 외래적인 요소가 강한 문화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멀리 보이는 옥에오 유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옥에오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정착지로서 주민들은 지중해,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원료를 가공해 만든 제품을 수출한 듯하다.그리고 다양한 광물과 가공 도구가 유적 성격을 말해준다. 이어 인도 문자가 있는 화물표, 중국 한나라 청동거울과 로마 황제 금화, 현지에서 세공하거나 수입한 다양한 장신구와 구슬로 당시 활발했던 해상 교역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옥에오 유리구슬은 성분과 형태, 색상 등이 마한·백제 권역에서 나오는 유물과 매우 유사하다.
베트남에서 4세기 이후, 성(城)을 꼬아메(Koame)라고 부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옛 고문자가 베트남어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어서 이해바랍니다.) 꼬아메는 한자로 음차하면 고마(固麻)가 된다. 그리고 작은 동네는 탕로이(Than roi)라 하는데 이를 한문으로 음차하면 승룡(昇龍)이다. 그러나 작은 동네를 승룡(昇龍)으로 부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탕롱을 승룡(昇龍)으로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뜻의 내용은 아닐것이다. 하노이를 중세 베트남 역사에서 탕롱이라 불렀고 베트남의 역대 왕조들은 이 곳에 수도를 두어 왕궁을 세웠다. 그런 것으로 볼 때는 이미 昇龍은 단순한 읍의 개념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고마(固麻)와 관련해서 이런 문헌을 찾아냈다.
<양서-백제전>에서 말하기를 "성(城)은 “고마”라고 부르고 읍(邑)은 “담로”라고 부르는데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다. 모든 종족의 자제들이 그것에 따라 나뉘어 살고 있다." (號所治城曰固麻謂邑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
여기서 나오는 고마(固麻)는 바로 백제 담로와 관련있는 문구이다. 담로는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耽羅)나 탐모라(耽牟羅)와 같은 낱말을 음차한 것이거나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그 뜻은 나라나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탕로이, 혹은 하노이의 옛 이름 탕롱은 이 내용에 해당된다. 즉 한문 그대로 탕롱을 해석할 때 "승천하는 용" 이지만 승천하는 용과 상관이 없다. 만약에 이것에 벗어난다면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기록된 탐라(耽羅), 탐모라(耽牟羅) 같은 말도 담로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라나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라는 의미와 탕롱의 위치 및 의미 등에서 보면 매우 유사성이 있다. 따라서 탕롱을 기존의 중국식으로 해석이 아닌 별도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