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잔의 고대 시대는 B.C 2~1세기 그레코 박트리아 시기로 첫 문헌에 나온다. 안티고노스의 사후, 안티고노스 왕국은 승자들에 의해 분할되었고, 시리아, 바빌로니아, 이란 고원, 소아시아 동부를 지배하는 셀레우코스 왕조, 키프로스, 이집트를 지배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케도니아 본국을 지배하는 안티파트로스 왕조,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서부를 지배하는 리시마코스 왕조가 성립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왕조는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비해 오래 가지 못했고, 카산드로스의 사후 왕위 계승 정쟁을 틈타 마케도니아를 탈환한 데메트리오스가 왕위를 찬탈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분지의 고도시 안디잔(Andijan)에 위치한 안디잔 자메 모스크 복합단지(Andijan Jame Mosque Complex) 내의 레기스탄 광장(Registon Maydoni), 출처 : Wikimedia Commons
심지어 데메트리오스는 리시마코스와 디아도코이 전쟁에 말려들게 된 에피로스(Epiros)의 왕 피로스(Piros)가 전쟁으로 인하여 추방되는 등 혼란이 계속 이어진다. 결국 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에 의해 안티고노스 왕조가 B.C 276년에 마케도니아 지배권을 확립했다. 디아도코이 전쟁의 마지막 전투는 B.C 281년에 벌어진 코로페디온(Coropedion)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셀레우코스는 리시마코스를 격퇴하여 그의 영토의 대부분을 함락시켰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는 이집트를 제외하고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대부분을 세력 하에 두었다. 그러나 이 전투 직후 셀레우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케라우노스(Keraunos)에게 암살당한다.
그렇게 하여 디아도코이의 첫 세대는 사라졌고, 전쟁은 또 하나의 단락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전투라는 것이 완전히 종식되는 것은 아니었고, 마케도니아에서 피로스와 안티고노스 2세가 마케도니아 패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도 남부 시리아를 두고 서로 쟁탈전을 벌였고, B.C 261년에 크레모니데스(Kremoides) 전쟁에서 안티고노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전투를 벌였던 것과 같이 디아도코이의 후손들이 로마에 흡수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었다. B.C 2세기 중엽부터 B.C 1세기 사이엔 중앙아시아, 북쪽에 있는 소그디아(Sogdiana)에서 남쪽의 북인도까지 그리스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그 세력이 유목민족에게로 옮겨가는 시기로 중앙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족들이 서쪽으로 이주하며 이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이후 약 200년간 이 지역에 번성했던 그리스 문화는 그레코-박트리아(Greco-Bactria) 왕국이 북쪽 초원지대에서 남하한 유목민족인 사카족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그 세력을 잃어갔다. B.C 175년경 중앙아시아, 감숙과 돈황 지역에 살고 있던 월지족은 그 당시 세력이 커진 흉노족에게 밀려 서쪽으로 쫓겨나 일리(Ili) 강 근처에 도달하였고 그곳에 살고 있던 스키타이인을 쫓아내며 그들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스키타이인들은 월지에 쫓겨 페르가나(Ferghana)와 소그디아나(Sogdiana)로 이주했다. B.C 155년 월지는 오손(烏孫)과 흉노의 연합군에 패해 또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월지는 다시 한번 스키타이 인을 몰아내어 스키타이 인들은 박트리아와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파르티아의 남서쪽으로 이주하였다.
B.C 126년 한(漢)의 장건이 월지를 방문했을 때 월지는 박트리아를 다스리며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전한다. B.C 115년 파르티아의 강성한 군주 미트리다테스 2세(Mithridathes II, 기원전 128-기원전 88)는 소그디아나에서 월지를 격파했고 B.C 110년 경에는 파르티아에서 스키타이 인들을 물리치고 파르티아의 영토를 다시 차지하며 중앙아시아를 평정하였다. 1세기경 월지의 족장 쿠즐라 카드피세스’(Kujula Kadphises 30-80 AD)는 여러 족장들을 규합하며 세력을 키워 간다라(Gandhara) 지방과 카블(Kabul), 펀잡(Punjab), 인더스(Indus) 북쪽 지방을 점령하며 쿠샨 왕조를 세웠다. 2세기 초, 카니쉬카 왕(Kanishka, 100-26 혹은 120-46)때 쿠샨 왕조는 전성기를 맞는다. 카니쉬카왕은 중앙아시아 일부, 박트리아(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 북서인도(오늘날의 파키스탄) 그리고 북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중앙아시아는 로마-중동-중국을 잇는 무역루트 지역이었다. 로마 제국은 트라얀(Trajan)과 하드리안(Hadrian. 98-138 AD) 시기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쿠샨 왕조와 교섭하였고 쿠샨의 카니쉬카 왕은 실크로드에서 호탄(Khotan), 야르칸드(Yarkand), 카슈가르(Kashgar) 지역을 점령하며 중국과 접촉하고 있었다. 이렇게 쿠샨 왕조는 세계의 문화적 중심과의 접촉을 통하여 실크로드 무역을 증대시키며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쿠샨 왕조의 마지막 위대한 왕 바수데바 1세(Vasudeva I, 164-200 혹은 184-220) 이후에 쿠샨 왕조는 서서히 쇠퇴기에 접어들며 그 당시 페르시아에서 흥기한 사산 왕조에게 점령되었고 카시미르(Kashmir) 지역과 펀자브(Punjab) 지역에서 명맥을 이어가다 그 지역 종족들에게 멸망당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안디잔의 고대 시대는 B.C 2~1세기 그레코 박트리아 시기로 첫 문헌에 나온다. 안티고노스의 사후, 안티고노스 왕국은 승자들에 의해 분할되었고, 시리아, 바빌로니아, 이란 고원, 소아시아 동부를 지배하는 셀레우코스 왕조, 키프로스, 이집트를 지배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마케도니아 본국을 지배하는 안티파트로스 왕조,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서부를 지배하는 리시마코스 왕조가 성립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카산드로스 왕조는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비해 오래 가지 못했고, 카산드로스의 사후 왕위 계승 정쟁을 틈타 마케도니아를 탈환한 데메트리오스가 왕위를 찬탈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분지의 고도시 안디잔(Andijan)에 위치한 안디잔 자메 모스크 복합단지(Andijan Jame Mosque Complex) 내의 레기스탄 광장(Registon Maydoni), 출처 : Wikimedia Commons
심지어 데메트리오스는 리시마코스와 디아도코이 전쟁에 말려들게 된 에피로스(Epiros)의 왕 피로스(Piros)가 전쟁으로 인하여 추방되는 등 혼란이 계속 이어진다. 결국 데메트리오스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에 의해 안티고노스 왕조가 B.C 276년에 마케도니아 지배권을 확립했다. 디아도코이 전쟁의 마지막 전투는 B.C 281년에 벌어진 코로페디온(Coropedion)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셀레우코스는 리시마코스를 격퇴하여 그의 영토의 대부분을 함락시켰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는 이집트를 제외하고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대부분을 세력 하에 두었다. 그러나 이 전투 직후 셀레우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아들 케라우노스(Keraunos)에게 암살당한다.
그렇게 하여 디아도코이의 첫 세대는 사라졌고, 전쟁은 또 하나의 단락을 맞이한 셈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전투라는 것이 완전히 종식되는 것은 아니었고, 마케도니아에서 피로스와 안티고노스 2세가 마케도니아 패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도 남부 시리아를 두고 서로 쟁탈전을 벌였고, B.C 261년에 크레모니데스(Kremoides) 전쟁에서 안티고노스 왕조와 프톨레마이오스가 전투를 벌였던 것과 같이 디아도코이의 후손들이 로마에 흡수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었다. B.C 2세기 중엽부터 B.C 1세기 사이엔 중앙아시아, 북쪽에 있는 소그디아(Sogdiana)에서 남쪽의 북인도까지 그리스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면서 그 세력이 유목민족에게로 옮겨가는 시기로 중앙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족들이 서쪽으로 이주하며 이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이후 약 200년간 이 지역에 번성했던 그리스 문화는 그레코-박트리아(Greco-Bactria) 왕국이 북쪽 초원지대에서 남하한 유목민족인 사카족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그 세력을 잃어갔다. B.C 175년경 중앙아시아, 감숙과 돈황 지역에 살고 있던 월지족은 그 당시 세력이 커진 흉노족에게 밀려 서쪽으로 쫓겨나 일리(Ili) 강 근처에 도달하였고 그곳에 살고 있던 스키타이인을 쫓아내며 그들의 영토를 차지하였다. 스키타이인들은 월지에 쫓겨 페르가나(Ferghana)와 소그디아나(Sogdiana)로 이주했다. B.C 155년 월지는 오손(烏孫)과 흉노의 연합군에 패해 또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월지는 다시 한번 스키타이 인을 몰아내어 스키타이 인들은 박트리아와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파르티아의 남서쪽으로 이주하였다.
B.C 126년 한(漢)의 장건이 월지를 방문했을 때 월지는 박트리아를 다스리며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전한다. B.C 115년 파르티아의 강성한 군주 미트리다테스 2세(Mithridathes II, 기원전 128-기원전 88)는 소그디아나에서 월지를 격파했고 B.C 110년 경에는 파르티아에서 스키타이 인들을 물리치고 파르티아의 영토를 다시 차지하며 중앙아시아를 평정하였다. 1세기경 월지의 족장 쿠즐라 카드피세스’(Kujula Kadphises 30-80 AD)는 여러 족장들을 규합하며 세력을 키워 간다라(Gandhara) 지방과 카블(Kabul), 펀잡(Punjab), 인더스(Indus) 북쪽 지방을 점령하며 쿠샨 왕조를 세웠다. 2세기 초, 카니쉬카 왕(Kanishka, 100-26 혹은 120-46)때 쿠샨 왕조는 전성기를 맞는다. 카니쉬카왕은 중앙아시아 일부, 박트리아(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 북서인도(오늘날의 파키스탄) 그리고 북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중앙아시아는 로마-중동-중국을 잇는 무역루트 지역이었다. 로마 제국은 트라얀(Trajan)과 하드리안(Hadrian. 98-138 AD) 시기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쿠샨 왕조와 교섭하였고 쿠샨의 카니쉬카 왕은 실크로드에서 호탄(Khotan), 야르칸드(Yarkand), 카슈가르(Kashgar) 지역을 점령하며 중국과 접촉하고 있었다. 이렇게 쿠샨 왕조는 세계의 문화적 중심과의 접촉을 통하여 실크로드 무역을 증대시키며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쿠샨 왕조의 마지막 위대한 왕 바수데바 1세(Vasudeva I, 164-200 혹은 184-220) 이후에 쿠샨 왕조는 서서히 쇠퇴기에 접어들며 그 당시 페르시아에서 흥기한 사산 왕조에게 점령되었고 카시미르(Kashmir) 지역과 펀자브(Punjab) 지역에서 명맥을 이어가다 그 지역 종족들에게 멸망당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