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헬레니즘 문화가 중앙아시아에 끼친 영향

알렉세이 정
2026-08-05

B.C 4세기 후반에 들어와 중근동에는 페르시아인의 시대가 종결되어 지면서, 그 대신 그리스와 로마인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이 시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중근동 정복 시기부터 이슬람의 등장 시기까지 거의 1,000년이나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행해진 동서 간의 교류는 중근동과 유럽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자체도 위대한 업적이지만, 정복에 따른 문화적 교류는 더욱 큰 결과를 가져왔다. 동과 서는 대결에서 조화와 융화로 발전했고, 중근동과 그리스의 전통적 사상과 예술은 상호 교류되어 세계적인 면모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통치자인 그리스인이 현지 귀족의 딸과 결혼하였고, 페르시아 풍의 옷을 입었으며, 그의 예하 병사들도 이를 따르도록 권장하였다. 


1a9efdce16b24.jpg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동방 원정 경로 중 중앙아시아 지역(박트리아, 소그디아나 등)에서의 군사 이동 경로와 연도를 나타낸 역사 지도, 출처 : Centralasia Adventures


또한 중근동 지역에 그리스 식의 도시를 건설하여 문화 교류를 촉진시켰으며, 스스로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를 계승한 세력이며 스스로 다리우스의 후계자로 자처하였다. 페르시아 사서(史書)들에는 이와 같은 문화적 융합 현상을 이민족이었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의 황제로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많은 예언자, 현자 및 철학가들이 인류의 형제애와 단일성을 주장했지만, 이와 같은 계획을 실현시키지는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헬레니즘 제국은 예하 장군들에 의하여 4개의 국가들로 분할되었다. 이는 가장 유능한 셀레우코스(Seleucos)는 시리아와 소아시아 반도의 대부분 및 인도 변방에 이르는 동부 지역을 차지하였고, 소아시아 반도의 나머지 지역은 안티고노스(Antigonus, B.C 382~B.C 371)에게,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Antipatros, B.C 377~B.C 317)에게 돌아갔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B.C 306~B.C 285)는 이집트를 물려받았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구약성경>에서는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리아에 근거지를 둔 셀레우코스 1세(Seleucos I, B.C 312~B.C 280)는 그리스어, 철학 및 과학 등을 중근동 지역에 보급하여 식민지화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 형태의 도시 건설 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였다. 그 대표적인 일례가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수도 안티오크(Antioch)이다. 항구인 셀루키아(Seleucia)는 그의 아들 안티오코스 1세(Antiochos Ⅰ, B.C 280~B.C 262)가 세워 아버지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셀레우코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셀루키아라는 그리스 양식의 도시를 여러 곳에 세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티그리스 강변의 동부 수도 셀루키아이다. 이 도시는 한때 60만 인구를 자랑하는 대도시였다. 셀레우코스(Seleucos) 왕조(B.C 312~B.C 264)의 가장 큰 공헌은 일력(日曆)을 도입하여 전 영역에 시행한 데 있다. 이와 같은 일력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창립 연도인 B.C 312년을 원년으로 계산한 태양력인데, 이슬람이 등장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시리아인과 유대인은 그리스력이라 부르고 있다. 박트리아와 월지(月支)가 남하해오고 파르티아가 생성되어 북으로 세력 확장을 하면서 호라즘 지역은 이들 민족의 주 쟁탈지로 변모되었다. 이 과정에서 호라즘은 월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월지가 흉노에 패망하자 대월지가 호라즘으로 들어와 호라즘 지역에 최초의 국가가 개설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대월지도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흉노의 압박이 거세짐에 따라 대월지는 중국 한나라와 동맹하려 하였으나 멀리 있는 관계로 이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북인도로 남하하여 쿠샨왕조를 건국했다. 그러자 비어 있는 대월지의 영토는 다시 호라즘이 영유하면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지역이 독립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앙아시아의 서북구에 위치하고 비교적 타국과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 계 흉노나 그 외의 헬레니즘의 잔존 세력에 의한 공격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도 호라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1 0

임경숙 화백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