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러시아 뿌쉬낀 예카테리나 궁전(Екатерининский дворе)과 호박방의 유래

알렉세이 정
2026-08-30

요즘 러시아 뿌쉬낀 예카테리나 궁전 (Екатерининский дворе)이 그립다. 많은 사람들이 햇갈려 하는게 이 궁전을 예카테리나 대제가 지은줄 알고 온다. 그러나 그분은 예카테리나 2세, 이 궁전을 짓기 시작한 여제는 예카테리나 1세, 표트르 대제의 둘째 부인이고 표트르 대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치세는 2년에 불과했고 그녀가 짓기 시작한 예카테리나 궁은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예카테리나 궁을 본 순간 주지육림(酒池肉林)이 생각나는데 그뜻은 "술은 연못을 이루고 고기는 숲을 이룬다" 라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상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이 궁을 보니 "술은 연못을 이루고 고기는 숲을 이룬다" 라는 뜻이 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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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뿌쉬낀 예카테리나 궁전 (Екатерининский дворе) 내의 호박방,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거야말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이 아닐까 싶다. 마치 황금이 벽을 이루고 아름다운 수많은 그림들이 천정과 벽을 이루는거 보면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정말로 술과 고기로 숲과 연못을 이룬게 아니라 이런걸 두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1717년 예카테리나 1세는 독일의 건축가 요한 프리드리히 브라운슈타인에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여름 궁전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1743년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의 치세 시대에 완공되었다. 그 후, 1756년 5월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황제의 명령에 따라 건축가 B. F. 라스트렐리의 감독 아래 옛 구조물을 철거하고 대규모적인 규모로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는 궁전이 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후 40년이 채 못 되어 러시아는 또 한 명의 대제인 예카테리나 2세의 시대를 맞게 된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치세 하에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화려함과 동시에 여러 면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기록한다. 대외적으로 영토가 확대되고 안정되어 가는 상황에서 황실과 귀족들은 호화로운 궁전과 저택을 지었고 이러한 부유층의 집안에서는 연일 사교 모임을 베풀었으며, 계몽사상과 서유럽 문화가 유입되면서 귀족들은 지적 유희와 허세까지 부리게 되는 근세 시대 들어서 가장 안정된 귀족 문화의 시대가 도래 했다. 이러한 황실과 귀족들의 극에 달한 사치는 농민과 농노들의 가혹한 착취를 바탕으로 했다. 


여제의 치세 때 농민들은 최악의 상태로 전락했다. 여제가 그녀의 총신이나 귀족들에게 방대한 국유지를 하사함으로써 반 자유 상태였던 농민들마저 비참한 농노의 신세로 전락해갔고, 사유지의 농노들은 사고파는 물건이 되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지주들에게 맡긴 채 참담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져 가는 국내 상황에서도, 여제의 치세 하에서 러시아는 유럽 강국 중의 하나로서 그 위세가 매우 높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유럽의 강국을 자처하며 세력이 강대했던 폴란드는 러시아의 주도하에 세 영토로 분할되어 없어졌고 헝가리 또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로 인하여 독립 정부가 붕괴된 지 오래였다. 


내부적으로도 행정체계가 잘 정비되어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제국의 기반을 갖추게 된다. 여제의 시대는 외부에서 보기에 실로 위대한 시대였던 것으로 평가했다. 예카테리나 궁전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호박방이다. 호박방은 본래 독일에 있던 것으로 1701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1세가 아내인 소피 샤를로테 왕비를 위해 지은 것이다.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 설치될 예정이던 이 호박방은 계획과 달리 완공 이전에 프리드리히 부부 모두 사망한 후, 아버지의 사치 행각을 싫어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즉위하면서 공사가 중지되었다. 공사가 중단된 호박방은 베를린 궁전에 임시로 설치되었다가 1716년 러시아로 옮겨갔다. 당시 러시아는 스웨덴과의 대북방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센은 러시아의 동맹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 상황이었다.


전쟁 중에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프로이센을 방문한 표트르 대제는 이 방을 보며 감탄했고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이 호박들을 표트르에게 외교협정의 대가로 넘겨주었다. 이렇게 러시아로 옮겨진 호박판에 예카테리나 2세 때 더 많은 양의 호박들이 추가되어 방 전체를 장식하게 변모했다. 지금의 방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를 포위했을 때 호박을 모두 약탈했기 때문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원본의 실체를 찾을 수 없으니 호박방도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방이며, 8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호박방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벽면 전체와 천장을 7톤의 호박 조각으로 빈틈없이 채운 '호박방'이 존재했다. 그 어느 보석보다 호박과 예술이 결합돼 빚어내는 화려함은 당대 최고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 되었었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선물했던  방 14m, 높이 5m의 호박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취를 감췄다. 나치에 의해 약탈당했다는 것 뿐이었다. 누가 어디로 가져갔는지, 현재까지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전 세계 보물 사냥꾼들은 러시아와 독일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아낸 건 지금까지 고작 사진 한장이었다.어쩔 수 없이 소련 정부는 30여 년 간의 호박방 수색 작업을 중단하고 800만 달러를  들여 호박방 복원 작업에 나섰다. 50여 명의 복원사들의 25년 작업을 거쳐 지난 20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 300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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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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