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해적의 바다에서 석양의 바다로 : 고대 지중해와 시데의 역사

알렉세이 정
2026-09-13

주요 문명이 인접한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는 일찍부터 해적들이 창궐했다. 온갖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답게 상선들이 많이 지나다니기에 해적질은 끊이지 않았다. 당대에는 항해술의 한계로 연안항해가 기본이었는데 그리스 반도가 워낙에 다도해다 보니 적당한 섬들 사이에 숨어 기다리면 알아서 상선이 다가오니 해적질이 줄어들 리가 없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해적질하는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해적이 아닌 사람들도 해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등 여러모로 해적질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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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시데 유적, 아폴론 신전 터,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고대 그리스에서 얼마나 해적질이 성행했는지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노예로 팔아먹으려고 한 해적들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페니키아인, 아시리아인 등 주요 문명들은 해적들을 당연히 소탕하려고 애썼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해적들이 하도 많아서 약 2500년전에는 해적 토벌과 해전이 구분되질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공격받으면 선전포고 없이 보복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해적들은 이 관습을 악용해서 자기들의 노략질을 이와 같은 보복행위로 주장하기도 했다. 로마 시대에도 해적들의 노략질은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노예와 약탈한 화물을 로마인들에게 팔기도 했으나, 점차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지중해의 해적들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젊은 시절 해적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 악명은 대단했다. 이에 로마 공화정은 폼페이우스에게 전 지중해의 해적들을 소탕하라 명령했고, 그가 사망한 뒤 아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 싸우기 위해 해적이 되었다. 그는 시칠리아 섬을 거점으로 이탈리아 해안을 약탈하고 성공적으로 봉쇄했으며, 패할 때까지 자신을 '바다의 통치자'라고 불렀으나 결국 진압되고 처형당한다. 


지중해는 이렇게 로마의 대대적인 소탕으로 좀 잠잠해졌지만 페르시아 만은 아직도 안전하지 않아서 페르시아는 해적들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 일례로 샤푸르 왕은 '어깨의 제왕'이라 불렸는데, 자기가 붙잡은 해적의 어깨를 뚫어서 새끼줄로 꿰어버려서라고 한다. 로마시대 당시의 해적들의 주 약탈품은 사람(노예), 포도주, 올리브유, 밀이었다. 로마는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노예를 많이 확보한지라 해적들의 사람을 붙잡아 와서 노예로 파는 행위 역시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들이 주로 활동한 해역은 해안선이 복잡한 마케도니아와 킬리키아 일대였다.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이 속한 아리우스 제독의 함대를 공격한것도 바로 마케도니아의 해적들이다.


시데를 관통하는 리만 거리는 유적을 개조한 기념품 상점이나 레스토랑들이 빼곡하다. 돌기둥만 황량하게 남은 다른 고대도시와는 다른 시데만의 개성이 골목에서는 묻어난다. 레스토랑에 앉아 물담배를 피거나 염소젖이 들어간 돈두르마 아이스크림을 군것질거리로 먹는 모습은 이곳에서 익숙한 풍경들이다. 시데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 황제가 함께 일몰을 바라봤다는 전설이 깃든 땅이다. 해변가에는 아폴론 신전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신전 앞에서 조우하는 시데의 일몰은 클레오파트라의 전설까지 덧씌워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 시데를 찾는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이곳에서의 석양을 맞이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든다. 일몰의 아폴로 신전은 터키 지중해의 관광지를 상징하는 간판 사진으로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도리아와 트로이, 킴메르의 예상과 달리 정작 아리아인들의 주력이 침공한 곳은 보스포루스가 위치한 서북부 해안이 아니었다. 총 8만으로 이루어진 하타-아리아 집단군들은 북쪽을 방어하고 있던 도리아군의 허점을 노려 아직 동원이 완료되지 않은 안탈리아 지방을 총공격하고 이어 셀축 일대를 지나 당시 도시가 세워지기 전의 에페소스 등의 촌락을 공격했다. 


지리적으로 스미르나 일대까지 강력한 방어선을 삼을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고 있던 도리아와 트로이군은 서북쪽 킴메르 군에게 도움을 요청해 급하게 병력을 증강했다. 그러나 아크히사르 일대에서 킴메르군이 하타족의 유인에 말려 전멸했고 에드레미트에서는 트로이 연맹군이 아리아 기병대에게 철저히 궤멸되었다. 결국 스미르나에 포위되어 있던 도리아 군과 안탈리아(Antalia)부터 지중해 남서 해안에 있던 모든 촌락들이 아리아인들과 하타족에게 항복하면서 정복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때부터 이오니아 식민도시가 세워지고 로마가 지배할 때 이 지역들은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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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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