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 서양 철학사를 대하는 방법

류종렬
2026-05-05

서양 철학사를 대하는 방법

인생은 짧고 학술은 길다(Ὁ βίος βραχύ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ή), 히포크라테스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주희(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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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철학은 수학들만큼이나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점에서 철학이 단수로서 철학이 아니라, 수학들처럼 철학들이라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각 철학은 사유의 토대로서 대상의 단위들을 달리하고 있다. 게다가 지식체계에서도 사회철학은 사회를 심리철학은 영혼을, 그래도 철학의 토대는 자연일 것이고, 자연의 배후 또는 변화 과정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과 사상은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보편과 완전이라는 개념이 유명론이래로 사라졌음에도, 그 용어들이 불완전한 인간에게 믿음의 대상으로서 또는 미래의 이상으로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실증적 토대 위에서 학문들은 빛의 전 방위 발산만큼이나 다양하게 펼쳐진 가운데, 철학들 중에 어떤 철학을 하고 있는지, 철학도는 철학사에서 어떤 자리 또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왜 탐구하는지 방법들이 중요할 것이고 그리고 항목, 개념, 관념을 누가 어떻게 다루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철학이란 용어는 탈레스로부터 자연 탐구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이뭣꼬’라는 물음에서도 ‘올바른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문제(화두)가 올바로 제기되었는지, 이것을 다루는 지적 능력이 있는지, 또는 이것이 대상으로 성립하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이런 논의에서 선문답처럼 보이는 용어, 문장, 발언 등에서, 그 발언의 시대상황과 그 인물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철학의 탐색 이전에는 신들이 그것들을 대행하기에 대상과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고, 상황과 사건의 진위도 잘 가려지지 않아도, 그래도 신들이 답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선문답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 호메로스이래로 그리스 극작가들은 대상을 정립하고 의미를 전달하려 했을 것이라 한다.

아테네 시대에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대상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인간이 있는지, 그 인간이 대상과 고정된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지, 인간이 고정된 것의 의미를 전달하려 할 때 다른 인간에게 그 의미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정된 자연도 고정된 인간도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하는지를 고민했다. 바깥의 신이 문제해결을 뚝딱해 준다는 것이 해결이 아니라, 시대의 필요와 합의를 질서라는 이름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자연과 영혼에 고정성이 없음에도, 자연의 운행과 인간의 운수에 필연적인 어떤 작동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늘의 원리, 지상의 법칙, 그것들을 탐색하는 인간의 인식이라는 세 요소가 맞물리어 가는 것이, 어쩌면 동일성을 요청하며, 철학사 또는 세계에 대한 성찰의 역사일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고대에는 하늘과 땅이 따로 있으면서 연대 또는 상호교감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중세에는 독단적인 유일신앙의 체제에서 하늘의 뚜껑 위에 알지 못하고 믿으면서, 완전과 보편의 선전제가 먼저라는 것을 투사하여 생각하였다.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라 상대적 통일성을 인정하면서, 이를 알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인식능력이라 보았다. 세계의 이해에는 원리와 법칙이 있다고 여기는 사고방식과, 세계가 풀어내는 이유와 근원이 찾아가는 사유방식은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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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철학이 변역(變易)의 시대를 맞이하여 통일성과 보편성의 지위 위에서라기보다, 개별학문들이 자율성과 정합성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의 시기였다. 18세기의 마감으로 한편으로 프랑스 대혁명으로 삶의 양식의 변화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인식역량에 대한 비판도 있다. 프랑스에서 수학들과 과학들의 발산으로 실증성의 강조가 있었고, 19세기 중반에서부터 제반 학문들이 성립하였다. 프러시아에서 칸트가 3대 저작에서 형이상학, 도덕학, 미학을 다루면서, 철학에서 도덕의 우선성을 드러냈다. 프랑스에서는 체제 변혁에서 사회변환에 관심이라면, 독일에서는 도덕론을 국가체제에 연결하여 인륜성을 절대성으로 다시 올려놓았고, 이로서 사람들은 관념론의 완성이라고 하지만, 인식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수학들의 발달과 확장에 이어서, 열역학, 파동역학, 전자기학 등 개별학문들의 탐구자들은, 절대성으로 향한 사변적 추론을 네오스콜라주의라고 비판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빛들세기”의 상상작용으로 “요상한 것들의 박물관”이라고 하였듯이, 자연으로부터 솟아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는 자연의 자율성으로부터 표출된 대상들과 이에 맞게 추론하고 설명해야하는 학설들을 정초하고자 한다. 브레이어는 프랑스 대혁명이 사회뿐만 아니라 지적세계에서도 사람들을 당황하게하고 제도 안에서 혼란을 계속해서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가 말하지 않았지만, 대혁명의 과정에서도 학문적 손상을 거의 입지 않은 두 분야, 하나는 수학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사(박물관성립) 탐구가 있었다. 이로써 철학이 모든 학문의 원리 또는 공리라는 생각과 학문의 접합성이 있다는 생각은 흐려진다. 게다가 1859년 이래 인간의 지위는 자연에서 상위도 아니라고 여기고, 인간이 자연을 주도한다는 지적 능력에 대해 문제제기가 논리와 수학에서는 파라독사들에 마주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형이상학에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철학적 대상이 선전제이라고 여기게 되며, 나아가 고대철학 이래로 학문의 기원과 원인을 자연과 질료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상화가 아니라, 연관의 조직화 또는 유기체화를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한편 인간의 인식능력(오성이든 지성이든 이성이든)을 통하여 보편성과 절대성을 안다는 것 자체가 독단이라 하거나, 정합적 체계를 세운 것들이 선전제미해결의 악순환이라 여긴다. 이로서 일부 작가들과 일부 수학자들은 인간이 낙원을 잃어버렸다고 걱정하였으며, 철학자들은 관념론과 이상론을 다시 통합하려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인간이 만들었던 왕정이나 국가가 아니라, 진리라기보다 가치에 맞는 체제와 제도를 정립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 진리가 인식체계에서 유비적으로 사회에 연관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또 진리체계 자체가 하나의 통일성도 완전성도 없음에도 체제에게 완전성과 절대성을 적용하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또한 우주와 자연에 대해 인간이 스스로 체계를 만들고, 삶의 터전에서 체제를 형성하는 길이 있을까? 브레이어는 그 자신도 19세기 후반의 철학적 방향들을 정립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신의 서술을 솔직하게 여러 갈래를 소개 정도라고 한다. 학문들 또는 개별과학들이 제한된 또는 정의된 영역 안에서 다양하게 자기정립 또는 정합성을 만들고 있었듯이, 각 나라에서도 역사와 터전에 맞는 성향과 경향들을 제도 속에서 다양하게 분출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말 20세기 초는 사회학과 심리학의 태동의 시기였다. 시대를 넘어 좀 더 부연하자면, 지식론에서도 이중화 경향이 있었다. 상층을 주도권으로서 인정하는 형이상학이 주지주의와 제국주의를 성립시켰다면, 자연 배후학으로서 자연의 자율성과 자발성 속에서 제도의 다양성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심리학적으로 상층으로부터 표면으로 적용에서 명령과 강제의 의식 방향이라는 파라노이아의 관점이 있다면, 자연(본연)의 자발성이라는 측면에서 심층에서 다양한 분출에 의해 양태들의 다각화에서는 사회학적으로 심정의 발현이라 여기며 의식의 분화로서 스키조의 관점이 제기될 것이다.

브레이어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식능력과 그 능력의 대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토대로서 삼고 있다. 신의 완전성과 그 신앙의 독단에서 벗어나려는 의미에서, 19세기에서도 하늘과 땅, 영혼과 신체 사이의 연대나 상응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자연 속에서 인간, 인간의 제도 속에서 개인, 개인 속에서 영혼 등으로 계열의 탐구로 전향하였다고 할 수 있다. 벩송의 표현으로 오랫동안 인간이 자연을 도구로 다루는 방식과 같은 ‘전도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제 자연의 자발성에서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해야 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지위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형이상학’으로서 원리와 법칙의 추구가 아니라, “자연배후학”으로서 기원과 원인에 대한 관점들이 퍼져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진위의 구별에서 인간의 인식과 학문의 체계를 정립하려는 쪽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면서 도구를 무기로 사용하듯이, 무기를 인간관계에 적용함으로써 제국주의로 향할 것이다. 이런 제국주의는 지식이란 도구를 무기로 삼아 지배의 방식을 견고하게 확장하려 전쟁도 불사하였다. 함께 사는 노력은 전도되었던 길과 다른 길을, 사유와 실천에서 전복의 길을, 문화의 다양성의 발현의 길만큼이나, 달리 생각하고 말하기를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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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타고라스주의의 영향아래 그리고 플라톤이래로 비례중항과 조화중항의 분화의 방향과 경향이 있어왔다. 고대 철학적 관점에서 성찰하면서 자연의 조직화, 생명의 유기체화, 또는 삶의 실증적 사건들에서 조화중항이 중요하고 먼저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사실과 대상을 다루는 비례중항의 사고는 아픔과 비참을 해소하기보다 제거하고 배제하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비례중항을 추구하는 논리주의와 법칙주의에서는 과학들과 문화들의 다양화를 추구하기보다, 네오스콜라주의처럼 하나의 통일된 세계아래 통합하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자연이 빛처럼 발산하고 그것에게 나온 영혼도 발산하며, 사유와 문화가 다양성을 발현하리라는 기대는 도구/무기의 사고가 지배하는 가운데 밀려나있었지만, 다양체의 사유는 여전히 표면의 이중성을 발현하고 있다.

이런 철학사적 관점에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브레이어는 저술 속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계급적 분열에서 투쟁과 전쟁으로 이르는 관념론과 이상론에서 벗어나, 학문의 다양성과 인류 문화의 다양화를 인정하는 사회학과 심리학의 발달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았다. 사유에서든 사회에서는 새로운 조직화는 만들어진 사실에서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실행하고 있는 사건들의 과정에서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의 연결이 평면적인데 비해, 사건의 연관은 계열들의 다양한 발현이다. 아마도 사건들의 실증에 관한 탐구에서 철학은, 수학들과 마찬가지로, 철학들로 다양하게 확장되어 가고 있다.

요컨대 󰡔철학사󰡕의 19세기에 대한 발문을 쓰기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앵글로색슨철학과 프랑스철학 사이의 발생적 분화가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자에서는 주어진 사실의 진위 판정으로 원리추구가 먼저인데 비해, 후자에서는 다양한 발현의 원인과 기원에 관심으로 진솔한 “자연배후학”을 철학의 토대로 삼고 있다. 전자에서는 관념 또는 진리를 파악하는 지성 또는 이성의 강조인데 비해, 후자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또는 자료들로부터 체계가 성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데 관심이 크다. 이런 방식들 때문에 전자가 문명론을 기반으로 서양 우월주의인데 비해, 후자는 다양체의 인정으로 문화적 연관들 사이의 조화중항을 찾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관념론과 실재론의 차이는 자연에 대한 탐구 방식과 체계화에 차이에서 오듯이, 전자에서 전 지구적 세계에 대한 태도에서도 지배방식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체제에 대한 관심이 내재되어 있다면, 후자는 자연과 인류가 현재 문제를 해소하려 노력하며 나아갈 방향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인본주의(humaniste) 대 인도주의(hnmanitaire) 차이와 더불어, 자유의 실행에서도 상품자유주의(liberaliste) 대 인성자유주의(libertaire)의 차이를 드러난다. 다음의 첨가는 동일반복 같지만 이질반복으로서, 철학사를 대하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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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전체를 개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벩송은 은퇴한 후 자신의 철학에 대한 견해를 썼다. 거기서 그는 학문이 성장한다고 보았으며, 그에 맞게 정확성을 지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철학이 공간화 위에서 생각하며 변화를 무시하는 경향이었는데 비해, 사물을 지속과 다양체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학문이 연역적으로 역행하는 방식과 달리, 내성적 성찰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내재해 있음을 자각하고 그 힘으로 미래에 예상 참여하기를 바랐다. 다음의 실행을 위해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내재성의 발현으로 노력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철학사에서 무엇을 길어 올려야 할까?

철학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류가 삶에서 자신의 방향을 탐색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문자 이전의 긴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탐구에서 철학사와 수학사는 나란히 걸어온 것 같다.

우선 문제의 해결에서 인간은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왔다. 삶의 터전에서 고통과 제도에서 비참을 해결하는 것이 한 사람 또는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각각은 터전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의 공통적 차원에서 해결방식을 찾아 나섰다고 해야 할 것이다. 터전에서 문제는 자연조건이 먼저일 것이고, 이에 대해 하늘의 운행과 터전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세계 또는 고대에서부터 사용하는 용어로서 우주는 당대의 지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인간 나름으로 영역과 추리를 위한 범주가 필요했다. 이런 범위들에 대한 관심이 학문들의 체계화를 촉진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을 체계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소위 말하는 인식론의 출발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세계를 대상으로 삼아, 체계를 정리하는 것을 존재론이라고 하였으나, 세계의 원리를 정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늘 뚜껑아래에서 체계라도 정리한다고 한 것이, 하늘의 운행의 영원성과 지상에서 생명의 유한성이라는 대비에 마주했다. 안다는 것이 영원성을 기준으로 원리 또는 법칙을 찾는 것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인간의 유한성이 영원성을 알 수 있느냐는 의문이 여전히 지식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 또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탐구를 한다는 것은 이런 회의를 벗어나 확실성을 찾아가려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원리를 설정하는 것이 우주에 대해서라기보다 생각하는 방식에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즈음에서 사유의 방법으로 동일반복을 하는 대상 또는 기호를 만들었고, 동일성이라는 원리가 표면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철학사의 발전 과정에서 동일률은 외부의 대상에 대한 자료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방식에 머물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반복하는 동일률이 있다고 해서 우주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에는 항상 인간의 유한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면 인간의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으로부터 동일성의 유지, 그리고 그로부터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인간의 범위 밖에서 세계는 완전하고 통일인데, 인간이 지식이 부족하여 통일성을 자신에게 실행할 수 없었다고 반성한다. 그 불완전한 인간이 화두의 지위에서 밀려나고, 세계의 완전성에 대한 지식의 체계를 먼저 세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세계 또는 우주를 알면 알수록, 인간이 아는 지식의 범위와 통일성은 인간의 인식 범위 밖이라는 것이다. 이런 범위의 확장과 지식 체계의 불완전이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것인가라는 고민보다, 인식의 능력이 있음에도 탐구 방법과 과거의 전승의 불완전함에서 오는 것으로 여겨 지식의 확장과 체계 정립을 위한 탐구방법들의 계발을 촉진하려 하였다.

그런데, 자연 또는 세계가 완전하지도 통일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음에도 완전과 통일을 먼저 전제로 두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심을 끝까지 밀고 가서 통일성도 완전성도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무엇을 탐구한다는 것인가라는 고민은 또다시 인간 자신에게도 되돌아온다. 인간이 추리하고 상상하면서 원리와 법칙을 정립하였다고 하는 그 찰나에, 그 원리의 기원과 근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아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이 지식의 체계를 세운다는 것과 자연으로부터 탐구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한다. 완전성과 통일성의 반성과 달리, 기원과 근원에 대한 문제제기는 인간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성의 확보에서 반성도, 통일성에서 원리를 통한 체계의 정립에서 성찰도, 인간이 자신에 대한 대상화 또는 실현화의 방법을 찾는 탐구도, 하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적 과정에 대한 통감(通鑑)을 통해서 자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무엇을 실행하는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인간의 통감이 아니라 자연의 통감으로부터 과거의 축적 위에 현재를, 그리고 미래에 방향을 설정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제대로 이루어지며, 어쩌면 인간이 자기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깊이한 후에, 과거와 기억을 통한 심층 탐구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세계의 통일성도, 지식체계의 완전성과 정합성도 한계가 있으며, 게다가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과거의 긴 과정에서 응축된 기억은 삶의 터전인 자연의 변화와 제도 속에서 실천 활동의 변천을 받아들여서, 전 지구적 체제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새로운 학문들 중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물론 브레이어가 정치경제학을 다루지 않아서, 체제의 변화에서 제국주의의 등장과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철학은 인류의 삶에서 끊임없는 문제제기에서 대립적 사유체계들 사이에 해결을 위한 평결, 합의, 협약을 만들어간다. 어쩌면 21세기의 인간의 두뇌와 같은 지식체계로서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우주의 통일성, 지식의 체계, 체제와 제도의 합의를 창안해 내기 위하여, 다양한 대립들의 수렴을 찾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특히 브레이어 철학사에서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로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성 또는 이성의 방법들도 필요하지만, 인류의 다양한 삶을 위한 공통의 관심으로 계약과 합의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그는 인류가 철학사에서 보여주듯이 오랜 축적으로 이루어진 기억의 현실화 과정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공동체의 정의와 자유(조화중항)의 현실화 추구의 길을 찾고 있다고 본다.

노력하는 인간은 학습에서 자신의 열기를 불러일으키고, 함께 나아가는 친구와 더불어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는 󰡔논어󰡕에서 열락(說樂)의 도를 평생 수도하듯이, 󰡔아함경󰡕 속에 들어있는 󰡔념처경󰡕에서 신수심법의 네 단계에서 각 단계에서도 걸 맞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이 도를 이루는데 소중하다고 하듯이, 어쩌면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에서 네 단계를, 벩송의 해석에 따라, 기억의 심층에서 표면의 이중성을 거쳐서 미래로 향하는 이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과 같으리라. 이제 철학사를 읽는 방법에서도 이런 관점을 유지하면서 읽어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유한성은 세대들을 거쳐 가면서도 반복될 것이다. 기억과 유전을 참조하여, 개체의 발생과정이 종의 발생과정을 이질반복하면서 새로운 변역(變易)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리라. 인류의 철학사는 싯달다, 공자, 플라톤 등이 제시한 길들과 마찬가지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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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을 하는 동안에, 현 세계는 19세기 후반보다도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게다가 코로나 이후 그리고 인공지능 연구의 발달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변하게 할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금융제국을 만들었다. 21세기에 판단인공지능은 정보제국을 만들 것 같다. 그럼에도 생성인공지능은 지구의 지층과 생명 유전 이라는 두 기억 층위들에 대한 통일성의 인식을 갖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주가 운동하고 지속하는 한, 지구는 여전히 변역(變易)의 터전이다. 우주와 지구에서도 통일성이 먼저가 아닐 것이며, 발현과 창안의 자발성이, 즉 다양체가 근원이자 토대로부터 표출이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세대를 거치는 이질반복의 삶에서 학습과 친구(동지)가 중요하며, 다음(아제)의 실행은 합의와 평결로서 비례중항의 정의를 이루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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