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3)

조성환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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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학(舊學)에서 신학(新學)으로

 19세기 후반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깨지고 그 자리를 서구열강과 일본제국이 대신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로 인해 한국사상에도 두 가지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게 된다. 하나는 민중 차원에서 종래의 삼교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서 종교적 형태로 표현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나 서양을 통해 신학문을 수용하여 기존의 삼교를 대체하는 흐름이다. 전자는 개벽종교의 창시자들이고, 후자는 개화파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양자의 공통점은 모두 종래의 삼교를 '구학(舊學)'으로 간주하고 '신학(新學)'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가령 1860년에 수운 최제우는 “유교와 불교의 운이 다했다”고 하면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다시개벽의 사상으로 ‘동학’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은 “새로운 하늘과 땅, 새로운 인간과 만물(新乎天新乎地, 人與物亦新乎矣)”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후천개벽과 정신개벽을 주창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개벽은 우주의 새로운 질서임과 동시에 철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학은 구학이 아닌 신학을 표방하는 진영에 속한다. 동학을 이은 천도교에서 <신인간(新人間)>을 간행하고 <신인철학(新人哲學)>(이돈화)이나 <새사람과 새한울>(오지영)을 저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1910년대에 천도교는 서양철학을 수용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0년에 창간한 <천도교회월보>에는 니체나 마르크스 또는 하이데거와 같은 현대철학자들이 소개되고 있고, 서양의 자연과학이나 종교학이 지속적으로 연재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20년에 창간한 <개벽>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일본학계의 자극을 받은 결과인데, 개화파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천도교는 ‘동학’이라는 자생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천도교와 비슷한 움직임은 불교 진영에서도 일어났다. 1916년에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 박중빈은 종래의 불교를 대신하는 새로운 불교로서 원불교를 창시하였다(초기 명칭은 ‘저축조합’, ‘불법연구회’). 그런데 이때의 원불교는 여러 가지 점에서 종래의 불교와 달랐다. 첫째는 붓다의 말씀이 아닌 박중빈의 말씀을 경전으로 삼았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말씀에는 동학에서 표방한 ‘개벽’의 시대정신과 철학사상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유불도 삼교의 학문이 ‘수양학’을 중심으로 녹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원불교는 하이브리드 사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세상의 모든 종교의 회통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종래의 중국적인 삼교회통을 '백교회통'으로 확장시킨 형태인데, 이 또한 신라의 풍류 이래로 회통과 포함을 강조한 한국사상의 특징이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동학이 ‘하ᄂᆞᆯ님’ 관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을 수립했다면, 원불교는 ‘은혜’ 관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를 구축하였다. 여기에서도 한국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동학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중국의 하늘 관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만물을 주재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만물의 속성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개념이 천명(天命)이나 상제(上帝)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개념은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이다. 천명이나 상제는 공맹으로 대표되는 유가(儒家)에서 즐겨 사용하였고, 무위와 자연은 노장으로 대표되는 도가(道家)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동학과 천도교에서의 하늘 관념에는 상제나 자연과는 다른 의미가 가미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의 하늘님”이라는 사상이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라고 하였고,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는 ‘자천(自天)’ 개념을 사용하였다. 시천주나 자천은 내 안에 신성한 존재가 거주해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중국철학에서 말하는 인성(仁性)이나 불성(佛性)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인성이나 불성은 누구나 수양을 하면 공자나 붓다과 같은 완벽한 인격을 갖춘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천주는,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면, 누구나 ‘신’과 같은 존엄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모두가 하느님과 같이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함축하고 있다. 동학이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하늘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형태의 사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인간과 하늘의 간극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조선성리학자들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이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원불교의 경우에는 동학에서의 하늘님의 역할을 부처님으로 대체하면서, 인도 불교의 대전제인 “일체개고(一切皆苦)”를 “일체개은(一切皆恩)”으로 전환시켰다. 즉 인도의 싯다르타가 모든 것이 무상하고 고통이라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면, 한국의 박중빈은 내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부처이고 은혜라는 깨달음을 얻으라고 설파하였다. 이렇게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게 얽혀 있다”는 불교적 진리로부터 윤리적 의미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모든 게 연기(緣起)에 의해 얽혀 있다, 따라서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는 해체적 존재론을 바탕으로 영원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설파했다면, 박중빈은 거기에 더해서 “모든 게 연기(緣起)에 의해 얽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타자의 도움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로 나아간 것이다. 원불교의 제1교리가 네 가지 은혜, 즉 사은(四恩)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물론 중국불교에서도 은혜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동학에서 말하는 ‘하ᄂᆞᆯ’에 상응하는 말이 중국에서도 ‘천’이나 ‘상제’와 같이 존재하였듯이, 중국불교에서도 <부모은중경>과 같이 은혜를 강조하는 경전도 있었다. 하지만 원불교와 같이 얽힘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은혜를 말한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은혜가 제1교리로 격상된 적은 없었다. 가령 중국의 불교나 유교에서 ‘부모의 은혜’라고 하면 “부모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고마운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은혜이지, 부모와 내가 존재론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얽힘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에서 은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동학과 원불교에서는 종래의 중국철학과는 다른 차원의 하늘 관념과 은혜 관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과 실천 체계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2대 지도자, 3대 지도자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 출처: 조성환, <프롤로그: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성환 외, <한국철학 다시읽기: 인물로 보는 한국철학사>, 모시는사람들, 2024, 2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