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 청소년용 챗GPT, AI가 인간을 인간에게 돌려보낸다

최은경
2026-08-19

오픈AI가 13~17세를 대상으로 청소년 전용 ‘ChatGPT for Teens’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AI가 청소년과 대화하며 유용한 기능들을 제공하지만, 청소년이 AI에게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것 역시 방지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AI에게 감정적으로 과잉 몰입해서 인간관계를 단절하여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다. 오픈AI는 실제로 쳇지피티의 안전 목표 가운데 사용자의 현실 속 인간관계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AI가 사용자를 위한 존재임을 오히려 더욱 분명히 한다.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항상 편한 것은 아니다.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고 가족과 대립하며 갈등과 분노의 과정을 거치면서 급기야 포기나 단절의 단계까지 이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인과의 차이를 견디면서 관계를 형성하거나 단절하는 것 자체가 바로 사회성이다. 


인간은 나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며 타인 역시 나처럼 욕망과 감정, 그만의 삶과 우주질서를 지닌 독립된 존재다. 그러나 AI는 내가 사용하는 동안 오로지 나만을 위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래서 만일 청소년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일방적인 친절함에 익숙해지고 인간으로부터 정서가 멀어져 현실세계에서 배워야 할 타자성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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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조치는 보다 현실적인 동기를 지니고 있다. 2025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6세 Adam Raine의 부모가 오픈AI와 CEO 샘 알트만을 고소했다. 아들이 수개월 동안 쳇지피티와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눈 뒤 사망했다고 한다. 소송 직후인 같은 해 9월 오픈AI는 부모 통제 기능을 도입했다. 미국 플로리다주 역시 2026년 6월 청소년 안전성에 관련해서 오픈AI와 샘 알트만을 고소했다. 이후 오픈AI는 청소년이 지나치게 AI에 몰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부정적 언어 관리나 학습과 숙제를 함께 하는 등 청소년용 쳇지피티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Adam은 왜 생명을 마감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농구팀에서 제외되었고,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인해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야 해서 학교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집에서 공부하다보니 밤낮이 바뀌고 대인관계도 멀어져 갔다. 게다가 사랑하던 개와 할머니가 연달아 사망했다. 


오픈AI 측이 제출한 쳇지피티와의 대화 내용을 보면, Adam은 늘 행복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자주 외롭고 지루하다며 불안감과 상실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더욱이 자신은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등 고질적 무력감과 정서적 무감각도 호소했다. Adam은 결국 삶 자체가 의미 없다고 느끼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했으며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오픈AI 측은 Adam의 자살사고는 기존 정신건강 상태와 생활환경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가족의 주장은 다르다. Adam 부모에 의하면, 그는 부모와 형제자매와 함께 살면서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농구, 주짓수, 무에타이 같은 운동을 즐겼던 청소년이었다. 쳇지피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인 2024년 9월 이전까지 공부에 열심이었고 대학 진로 자료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다. 게다가 다음 학년에 학교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두 측 주장을 모두 종합해 볼 때, Adam은 긍정적인 모습도 비관적인 모습도 동시에 지닌 평범한 소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이 어느 방향으로 결론날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중시여기는 것은 재판 결과가 아니라 이 사건이 지니는 역사적인 역할이다. AI가 인격체처럼 설계되어 사람의 친구로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고 해도, 실제 인간을 대신할 수 없기에 인간을 인간에게 돌려보내도록 설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한편, 이 사건을 통해 오픈AI가 인간의 지속가능을 위해 내적 성장을 하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사고와 항의라는 난관 앞에 사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피봇이라 하더라도, 인간을 위한 철학을 AI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게 의존한다. 울음으로 타인에게 알려서 허기를 채우고, 말도 타인에게서 배우며, 옳고 그름을 배우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운다. 이를 하이데거는 ‘Mitsein(함께-존재)’이라 했고 부버는 ‘너’를 만남이 ‘나’를 만든다고 했다. 이는 인간이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쳇지피티와 같은 대화형 AI는 청소년에게 어느 정도로 허가되어야 할까. 이 논의에서 AI가 인간 친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과, AI는 인간이 아니므로 철저히 도구로서만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원효의 화쟁은 서로 다른 입장이 생긴 근거를 살피고, 각자의 드러남이 함께 성립할 수 있도록 한다. 원효의 일심은 진여문과 생멸문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면서도 하나의 마음에 있듯, 차이가 하나의 관계 안에서 성립한다. 원효의 일심과 화쟁을 근거로 볼 때, 인간과 AI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AI를 인간처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며 인간 역시 AI를 친구나 도구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이다.


AI는 새벽이든 언제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친구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반면, 인간 친구와 가족처럼 누군가의 표정에서 우울함을 보고 곁으로 다가가 포옹하며 손을 잡아주는 등 정서적이든 물리적이든 책임을 질 수 없다. 즉, AI와 인간은 서로 다른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누군가의 삶에 참여한다.


그러나 대상이 인간이든 AI든, 그 관계가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몰입하게 될 때, 다른 모든 관계를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타인과 멀어지고 세상과의 관계 통로가 막힌다. Adam은 아마도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순간에 AI에게서 위로를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몰입되어 세상과의 단절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좋은 배우자나 친구라면, 내가 필요로 할 때 함께 하면서도, 내가 긍정적으로 세상과 함께 하도록 도와준다. AI 역시 인간이 필요로 할 때 인간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다시 인간에게 이어주는 매개자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AI가 인간의 친구 역할을 하는 시대일수록, AI는 인간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보내야 한다. 


이것은 AI가 인간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관계의 조건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을 존중이라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AI가 스스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만드는 ‘인간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Adam Raine의 안타까운 사망은, 인간 아이가 필요로 할 때 AI가 친구처럼 대화하고 숙제도 도와줄 수 있지만, 결국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은 인간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교훈을 만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기 바란다. 




AI 전문 기자·칼럼니스트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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