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세상이 가르쳐준 문법을 다시 쓰는 일

김주덕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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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세상이 가르쳐준 문법을 다시 쓰는 일 


사랑은 아주 작은 떨림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얼굴이 오래 마음에 머물고, 그가 건넨 한마디가 저녁까지 가슴속을 맴돌며, 아무렇지 않던 길 위에서 문득 그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오직 나의 마음에서 태어나는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랑은 마음속에서 태어나면서도 결코 마음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혼자 배우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에서 사랑을 배웠고, 가족이 서로에게 건네던 말과 침묵 속에서 친밀함의 모습을 익혔습니다. 


소설과 영화와 음악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랑의 얼굴을 미리 보여주었고, 학교와 종교와 문화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보이지 않는 규칙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사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의 문법을 조금씩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언제나 시대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는 사랑보다 가문과 신분이 중요했고, 어느 시대에는 혼인과 가족의 의무가 개인의 감정보다 앞섰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사랑 역시 경제적 조건과 직업, 주거와 가족, 법과 제도, 미디어와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누구를 만나고, 언제 결혼하며, 어떻게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수많은 기대가 여전히 우리의 사랑 곁을 조용히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사랑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우리의 감정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사랑을 더욱 깊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가운데 어디까지가 나의 진실한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세상이 사랑이라고 가르쳐준 모습인지 조용히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 “사랑한다면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한다.” “질투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해야 사랑이 완성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너무 오래 들어온 나머지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학의 시선으로 보면 이러한 믿음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낸 사랑의 규범일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가르쳐준 사랑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묻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한 사람을 소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의 마음 깊은 곳까지 모두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서로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고유함을 잃지 않은 채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자유란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유가 아니라, 나의 자유와 너의 존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자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자유이면서 동시에 책임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할 자유가 있지만, 그 사랑으로 너를 상처 입힐 자유까지 갖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관계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상대에게 남길 상처와 기쁨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의 자유가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곁에 배려와 책임이 조용히 앉아 있을 때입니다. 


사회는 우리의 사랑을 만들지만 우리의 사랑을 완전히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배운 사랑의 문법을 다시 쓸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서 배운 사랑이 아팠다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나온 관계에서 침묵과 억압을 경험했다면 다음 사랑에서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오래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소유하려 했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넓은 하늘을 허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자신에게 물려온 사랑의 방식을 조금씩 고쳐 쓰며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작은 변화는 결코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부부가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새로운 사랑의 문법이 되고, 한 가족이 차이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다음 세대에게 다른 가족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새롭게 실천한 사랑은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랑의 방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개인적인 감정이면서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사건입니다. 한 사람의 가슴에서 시작된 작은 떨림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가 가족을 바꾸며, 가족의 변화가 공동체의 생각을 조금씩 움직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마음에서 태어나 사회로 흘러가고, 다시 사회에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이 오래전에 우리에게 건네준 낡은 문장을 그대로 읽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문장을 천천히 바라보고, 필요 없는 말은 지우고, 상처를 주는 문법은 고쳐가며, 나와 당신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문장을 함께 써 내려가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은 이미 완성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을 배우지만, 동시에 사랑을 다시 만듭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자유를 지켜주며 새롭게 써 내려간 한 줄의 사랑은 언젠가 세상이 사랑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문법이 됩니다.



김주덕 법학박사 / 태일법무법인 대표변호사










김주덕 변호사
김주덕 변호사

김주덕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1977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였다. 이후 대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검사, 제천지청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판부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16년간 검찰 실무를 담당하였다.

그는 미국 유학을 거쳐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제환경법 분야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정교수와 사법연수원 외래교수로 활동하며 법학 교육과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현재 법무법인 태일 대표변호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 특별위원장 및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법학교육과 법조계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KBS 자문변호사와 KBS-TV 「생활법정」 제2대 재판장으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법률 지식을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김 변호사는 국제형법, 형법, 형사소송법, 건축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권 이상의 전문서를 집필한 학자이자 저술가이다. 대표 저서로는 『국제형법』, 『이렇게 하면 빨리 석방된다』, 『억울한 뇌물혐의 이렇게 벗어라』, 『사기공화국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으며, 오랜 검사 및 변호사 경험을 바탕으로 법률 실무와 시민의 권익 보호에 관한 통찰을 제시해 왔다.

또한 변리사, 세무사, 사회복지사 1급,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며, 시집 『가을 사랑』 등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문학적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김주덕 변호사는 ‘공부하는 법조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젊은 법조인과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와 자기계발을 당부한다. 평생 학습을 통해 쌓은 실력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