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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지적 막노동인

 

함안에서 나는 ‘싱구’였다. 친구들도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 삼짇날, 제비가 돌아오고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 태어났다고 어른들은 늘 “참 좋은 날에 태어났다”는 말을 했다. 강물과 금빛 모래사장, 버들 숲과 부엉이 울음 속에서 자란 나는 학교보다 강이 좋았고, 숙제보다 꽃이 좋았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일들을 만났다. 나는 ‘싱구’인데 출석부에는 ‘승규’라고 적혔고, 선생님은 ‘성구’라고 불렀다. ‘아부지’라고 말하며 자랐는데 받아쓰기에서는 ‘아버지’라고 써야 맞았다. 내가 알고 있던 말과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 사이에는 자꾸 틈이 생겼다. 익숙한 말 하나에도 서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연장은 문제화(Problematization)다.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보다 왜 그것이 답으로 정해졌는지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작은 금을 내고, 그 틈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을 굳이 이름 붙인다면 ‘자유로운 지적 막노동’이라고 하고 싶다. 남들이 그냥 지나가는 곳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 들여다보고, 익숙해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을 다시 묻는 일이다.

 

무엇이 진리인가보다 사람들이 왜 어떤 것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다. 한때 ‘진리게임(truth game)’을 붙들고 논문을 쓰기도 했다.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어떤 말이 참으로 인정되는가, 그리고 그 진리에 따라 사람은 어떻게 분류되고 다루어지는가.

 

그리고 너무 익숙해져 더 이상 진리라고 의식하지도 않는 생각들,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따르게 되는 보이지 않는 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공기권력’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문제화’와 ‘공기권력’을 연장으로 삼아 한국의 현실을 다시 들여다본다. 당연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이지 않는 힘은 어떻게 우리의 판단과 행동 속에 스며드는지를 살핀다. 사라져가는 것과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것에도 작은 금을 내고, 그 틈에서 발견한 질문들을 수필로 쓴다.

 

지나온 삶은 ‘스텔스 모델’로 둔다. ‘스텔스 모델’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성능으로 말하듯, 나도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글로 남긴다.

 

나는 세상에 과시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다. 삼짇날 세상에 놀러 나왔던 아이처럼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묻는다.

 

“그 생각은, 언제부터 내 것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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