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표준을 만들었는가

박싱구(承奎)
2026-08-29

제4부

누가 표준을 만들었는가

 


어떤 말은 표준이 되고, 어떤 말은 사투리가 된다.

어떤 길은 중심이 되고, 어떤 길은 변두리가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를 중심에 세우고, 다른 하나를 주변으로 밀어냈을까.


부산 지하철에서 품게 된 그 질문은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서울 사람이 되려고 한 적이 없었다. 서울말을 배우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나는 서울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혀는 조금씩 서울말을 닮아 있었고, 나는 그 변화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일까.

 

나는 그 질문을 따라가면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말과 문화와 생활양식이 어느 순간부터 서울을 넘어 사회 전체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가까울수록 세련되고 유능하며 성공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런 현상을 하나의 말로 붙잡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Seoulism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689d9d6851ed4.jpg


 

그 말을 붙이고 나니 문득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Orientalism이 떠올랐다.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며 자신을 중심에 놓았던 것처럼, 서울도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진 말과 기준을 중심에 놓고 지방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두 현상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하나는 서구와 동양 사이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한 국가 안에서 형성된 중심과 주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중심에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그 시선이 어떻게 하나의 기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서로 닿아 있었다.

 

Seoulism은 서울을 좋아한다는 뜻도 아니고, 사람들이 서울에 많이 모여 산다는 뜻도 아니다. 서울에서 형성된 기준을 사회 전체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기준에 가까워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이상한 것은 아무도 우리에게 그렇게 생각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새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도 그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언어였다.

 

사람들은 흔히 표준어가 처음부터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바르고 아름다운 말이 있었고, 그것을 표준어로 정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준어는 땅속에서 발견된 유물 같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준 것도 아니다. 여러 지역에서 쓰이던 말 가운데 사회가 함께 사용할 말을 고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은 결과였다. 그리고 한번 정해진 기준은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에서 확인하고 방송과 언론에서 계속 듣게 되면서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표준어는 발견된 말이 아니라 선택된 말이었다.

 

그러고 나니 궁금해졌다.

 

무엇이 표준어인가보다 누가 무엇을 표준으로 삼았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애쓴 조선어학회 사람들도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 중심에는 경상남도 의령 출신의 국어학자 이극로가 있었다. 그는 독일 베를린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27년 《중국의 생사 공업(Die Seidenindustrie in China)》으로 철학박사(Dr. phil.) 학위를 받았다. 유학 중이던 1923년에는 베를린대학교에서 조선어 강좌를 개설하여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고, 1929년 귀국한 뒤에는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의 활동은 단순히 우리말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했고, 한글맞춤법 제정위원과 표준어 사정위원을 지냈으며, 사전 편찬 전임위원과 조선어학회 간사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생각한 표준어는 어느 한 지역의 말을 다른 지역의 말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을 두루 살펴 공통성을 찾고, 민족 전체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말을 만들고자 했다. 지방에서 쓰이는 말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이루는 소중한 자산으로 보았다.

 

표준어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다음이었다.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 언제부터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을까.

 

이극로의 삶에는 그 시대의 상황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된 그는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풀려났다. 우리말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일조차 민족적 저항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광복 이후 그는 다시 국어운동에 나섰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비롯한 우리말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남북의 통일 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길을 택했다. 1948년 4월에는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으로 갔고, 협상이 끝난 뒤에는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고 북한에 남았다.

 

북한 정권이 수립된 뒤에도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에서 정치적 요직을 맡는 한편 과학원에서 조선어 연구를 계속했고, 1960년대에는 북한의 문화어운동에도 관여했으며, 1978년 평양에서 생을 마쳤다.

 

한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었던 학자가 해방 뒤에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역사의 한쪽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어느 체제에 있었는가와 별개로, 그의 삶에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말을 지키고 정리하는 일은 곧 그 말을 사용하는 공동체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었다.

 

해방 이후 그 기준은 국가의 제도로 자리 잡았다.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했다. 국가는 그 필요에 따라 표준어를 제도의 틀 안에 넣었다. 학교에서는 그 말을 가르쳤고, 시험에서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았으며, 방송과 언론에서는 같은 말을 전국에 흘려보냈다. 그렇게 하나의 공통된 언어는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중심이 서울에 모이면서 표준어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 한양은 정치의 중심이었다.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서울은 행정과 교육의 중심이 되었고,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경제와 문화까지 서울로 모였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과 자본, 언론과 방송도 서울에 집중되었다.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었고, 사람이 모이니 다시 돈과 정보가 따라왔다. 그렇게 서울의 중심성은 점점 더 커졌다. 서울은 어느새 하나의 도시를 넘어 전국의 사람과 문화와 정보가 모이는 거대한 플랫폼이 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문화도 그곳을 거쳤다. 아리랑과 판소리, 씨름과 지역의 음식, 여러 예술과 생활문화가 서울에서 다시 소개되고 평가되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 문화는 서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것들이 서울에서 다시 소개되고 평가되면서 새로운 기준 속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중심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모으고 연결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힘도 함께 갖게 된다는 뜻이었다. 서울에서 인정받은 것은 전국적인 것이 되었고, 서울에서 세련되다고 여겨진 것은 세련된 것이 되었다. 서울에서 쓰는 말도 자연스럽게 표준적인 말로 받아들여졌다. 서울은 사람과 문화를 모으는 곳이면서, 어느새 무엇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표준어와 서울말의 관계도 달라졌다. 서울말을 쓰는 사람은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유능하고 유식하며 세련된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지방말을 쓰는 사람은 능력과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촌스럽거나 무식하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능력과 교양을 가르는 신호가 되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제 말의 옳고 그름이 아니었다.

 

왜 어떤 말은 다른 말보다 더 좋은 말로 여겨지는가.

 

이런 위계는 누가 따로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지방말을 쓰는 사람은 낮은 사람이라고 가르친 적도 없고, 법으로 서울말을 쓰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교육과 언론과 방송에서 같은 기준이 반복되고, 서울 중심의 사회구조가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이 표준인지뿐만 아니라 무엇이 더 좋은 말인지까지 구별하게 되었다.

 

기준은 설명되지 않아도 기준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들도 새롭게 들렸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것을 ‘상경’이라 하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낙향’이라 한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것을 ‘좌천’이라 여기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을 ‘영전’이나 ‘승진’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단순히 이동하는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서울을 위에 두고 지방을 아래에 두었던 오래된 위계가 말 속에까지 배어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기준이 사람들에게 똑같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방 사람은 서울에서 오래 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울말을 닮아간다. 그런데 서울 사람은 지방에서 오래 살아도 자신의 서울말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지방말을 일부러 거부해서도 아니고 서울말을 고집해서도 아니다. 이미 자신의 말이 사회의 기준인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굳이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지방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말이 ‘사투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말은 표준어이고 자신의 말은 사투리라는 구분은 학교에서 한 번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방송과 사회의 평가를 통해 계속 반복되면서 어느새 몸에 밴다.

 

기준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기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기준 밖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그 기준을 더 선명하게 의식한다.

 

나도 그랬다. 서울말을 배우려고 한 적이 없었다.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 말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었다. 나는 그저 서울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공부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내 혀는 이미 서울말을 닮아 있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바꾼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던 환경이었다. 웃음 하나, 시선 하나, 사람들의 반응과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기준들이 쌓이면서 나는 어느새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제야 처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왜 서울말을 배우지 않았는데 서울말을 닮아 있었을까. 서울은 왜 나에게 서울말을 가르치지 않았는데 나는 서울말을 따라가고 있었을까.

처음에는 서울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을 따라갈수록 시선은 서울을 넘어, 하나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과정으로 향했다. 표준이 만들어지고, 그 기준이 제도를 통해 반복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기준에 맞추어 간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처음 그 기준을 만들었는지도 잊힌다. 사람들은 그것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 질문은 마침내 ‘표준’이라는 말에 닿았다. 한번 표준이 된 것은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는가. 누가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떤 말이 참되고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가. 그리고 그렇게 인정된 기준에 따라 사람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처음에는 서울말과 지방말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그것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나면 사람들은 어느새 그 기준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 세련됨과 촌스러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선마저 그 기준이 만들어낸다.

 

나는 서울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서울 사람이 되려 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저 사회가 표준으로 받아들인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지 못했다.

 

 

 

 

 

 

제 5부 공기권력

 

제 1장. 그 힘의 이름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