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우는 존재일 수 있다

김용범
2026-09-01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언젠가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인간보다 더 많은 지식을 만들고, 그 지식을 다시 이용해 더 많은 지식을 생산한다면 결국 인간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AI가 스스로 지식을 증폭하기 시작하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걱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이미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정보를 읽고 비교하고 계산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지식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지식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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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에는 놓치기 쉬운 문제가 하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지식과 인간이 만드는 지식은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 속에 놓여 있는 존재다. 여기서 세상 또는 환경이라는 말은 산이나 강 같은 자연환경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환경이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조직과 제도, 경제상황, 몸의 상태, 날씨, 공간, 다른 사람의 말투와 표정,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회적 위치와 관계까지 모두 포함한다. 아주 미세한 환경에서부터 사회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환경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과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지식은 바로 이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 알고 있던 것과 현실이 다를 때 인간은 이상함을 느낀다. 보고서에는 문제가 없다고 되어 있는데 현장에 가보니 무엇인가 이상하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설명을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상대로 행동했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인간은 다시 생각한다.

 

현실을 보고, 이상함을 느끼고, 기존 설명을 의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시 현실과 맞춰본다. 인간의 지식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수정된다.

 

여기에서 다양성의 의미도 나타난다. 다양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의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위치와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한 분야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다른 분야의 지식과 만났을 때 갑자기 드러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 지식이 놓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성은 단순한 사회적 미덕이 아니다. 지식이 한 방향으로만 굳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지식 생산의 조건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의 지식 증폭은 인간과 조금 다르다. AI는 이미 축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정보의 관계를 찾는다. A와 B에서 C라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고, 다시 C와 D를 연결해 E라는 새로운 가설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만나게 되는 열린 환경 전체를 그대로 AI 안에 집어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카메라와 센서, 로봇을 연결하면 AI도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엇을 측정하도록 만들었는지, 어떤 센서를 달았는지, 어떤 정보를 데이터로 표현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환경에는 미리 설계하기 어려운 것들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우연한 사건을 경험하며, 실패하고, 관계가 달라지고, 자신의 위치가 바뀐다. 그 과정에서 어제까지 맞다고 생각했던 것을 오늘 의심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식은 이러한 삶의 과정과 분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AI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AI는 인간이 발견하지 못했던 관계를 찾아내고 새로운 가설과 지식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앞으로는 그 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AI가 서로 다른 방식의 지식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AI는 인간이 발견하지 못했던 지식공간을 빠르게 탐색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기존 지식의 전제 자체를 흔드는 새로운 경험과 질문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의 지식과 AI의 지식이 완전히 같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각각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지식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AI가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면 인간은 그것을 배울 수 있다. 인간이 현장에서 AI가 알지 못했던 현상을 발견하거나 기존 설명의 문제를 찾아내면 AI는 그것을 새로운 입력으로 받아 다시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다. AI가 새로운 가설을 만들고 인간이 현실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으며, 인간이 던진 새로운 질문을 AI가 수많은 지식과 연결해 전혀 새로운 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AI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넘어서는 관계라기보다 서로 다른 지식 생산방식을 가진 존재가 서로 배우는 관계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지능을 하나의 사다리처럼 생각한다. 아래에는 지능이 낮은 존재가 있고 그 위에는 인간이 있으며, 언젠가는 AI가 인간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인간과 AI의 지식 생성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이런 한 줄짜리 사다리가 적절한 비유인지부터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계산 능력에서는 AI가 인간을 훨씬 넘어설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정보량이나 탐색할 수 있는 조합의 수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것이다. 특정한 문제의 해결 능력에서도 이미 그런 일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AI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초월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능과 지식을 지나치게 하나의 척도로 보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목적을 만들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며, 행동하고, 그 행동의 결과를 경험하고, 다시 자신의 기준과 방향을 수정하는 과정이 있다.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 결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서 지식의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만들어져도 그 지식을 왜 사용해야 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무엇을 좋은 결과라고 볼 것인지, 어떤 위험을 감수해도 되는지, 현실에서 수행 가능한지, 그 결과가 사람과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해야 한다.

 

이를 크게 보면 인간의 활동은 인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그것을 판단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고, 실제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면서 유지하거나 다시 고친다. 인식, 판단, 방향설정, 수행, 유지와 갱신이 연결되어야 지식이 현실 속에서 작동한다.

 

AI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증폭해도 목적과 기준, 판단, 수행가능성, 유지와 갱신의 관계를 떠난 지식은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은 지식일 뿐이다. 반대로 인간의 경험만으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지식과 가능성을 AI가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워야 할 이유가 없다.

 

AI는 인간에게 새로운 지식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고, 인간은 AI가 만든 지식을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AI에게 배우고 AI도 인간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과 판단에서 다시 배울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보다 위에 있는가가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지식을 어떻게 공유하고, 서로의 오류를 수정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 시대의 미래는 인간과 AI의 경쟁이라기보다 거대한 학습관계가 될 수 있다. 인간은 AI가 가진 지식의 속도와 폭에서 배우고, AI는 인간이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문제와 경험과 기준에서 배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던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궁극적인 방향은 결국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조건으로 돌아온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사용한 결과가 인간과 사회와 환경의 유지조건을 파괴한다면 좋은 지식의 사용이라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AI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AI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거나 더 빨리 계산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생각하며, 서로 다른 경험을 받아들이고, 이상함을 발견하고, 기존 설명을 의심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그 결과를 다시 현실과 맞춰보는 능력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이런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을 인간 위에 올라설 또 하나의 존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 AI와 인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만들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존재가 될 수 있다. AI가 인간을 초월하는가를 묻기보다, 인간과 AI가 서로 다른 지식세계를 어떻게 연결해 더 잘 배우고 더 오래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AI의 능력은 인간이 만들어 온 지식과 기술이 확장된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 인간의 가치가 오직 능력으로 결정되었다면 학벌주의나 능력주의를 비판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며,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복종하는 사회도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능력의 크기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AI가 어떤 능력에서 인간을 크게 앞선다고 해도 그것을 곧 인간보다 높은 존재가 되었다고 볼 이유는 없다. AI의 능력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해야 할 새로운 능력의 확장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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