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Зарядье Парк (자랴쥐 공원)의 역사적인 흔적

알렉세이 정
2026-07-14

멀리 모스크바 Зарядье Парк (자랴쥐 공원)의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명목상이나마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였다. 비록 러시아는 1978년 제정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헌법에 따르고 있었지만, 소비에트 시절에 맞추어 제정된 이 법을 계속 쓰기에는 실정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해야 했다. 여기서 당시 러시아의 권력 구조를 잠시 살펴보면, 소련이 망하기 전 러시아 공화국의 헌법은 러시아 공화국의 최고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했지만, 실질적인 권한 면에 있어서 대통령제보다는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과 가까웠다. 


5f79a898aaf28.jpg

러시아 모스크바 Зарядье Парк (자랴쥐 공원),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즉, 대통령은 총리를 지명할 수 있었지만, 최고회의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또한 최고회의는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거나 국정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 있었다. 이는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최고회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장점처럼 보였지만, 사실 근본적으로는 소련 시절의 모순된 권력구조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소련이 처음 세워졌던 초창기에는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 격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에게 최고권력을 부여해, 어느 정도 의원 내각제 국가처럼 운영되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레닌 이후 실권을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 과정에서 자신의 직위였던 서기장(또는 총서기)을 활용해 최고권력으로 부상했다. 


따라서 이후 소련 최고권력은 행정기관 수장인 소련 장관회의 주석이나 입법기관 수장인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이 아닌 집권당의 총대표인 소련 공산당의 서기장에게 있었다. 보리스 옐친은 새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 최고회의의 권한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킨 대통령제 헌법을 원했다. 반면 러시아 최고회의는 소련 시절과 비슷하게 최고회의가 실권을 쥐는 내각제처럼 제정되길 원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문제를 가지고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여러 차례 조율했지만, 당연히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가운데 더이상 헌법 제정과 개혁을 미루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옐친은 9월 21일 최고회의를 해산, 12월에 새로운 입법부인 국가두마를 선출하겠다고 공표했다. 


문제는 당시 현행헌법이었던 러시아 공화국 헌법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은 어떠한 국가기관도 해산시킬 수 없었다. 또한, 대통령이 국가기관을 해산시킬 경우 대통령은 면직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9월 23일 대통령의 최고회의 해산조치가 헌법에 위반되며, 현행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해임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한편, 최고회의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는 9월 28일 첫 유혈사태를 겪으면서 점차 과격해지고 있었다. 이에 옐친은 내무부 병력을 동원해 국회의사당을 포위하는 한편,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수도, 전기 공급을 중단시켰다. 모스크바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불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10월 2일 모스크바 시의회는 다음날 있을 집회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10월 3일, 역대급 인파로 몰린 시위대는 시의회와 경찰이 정한 시위 구역을 벗어나 시청으로 향했다. 이에 경찰들은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결국, 계속해서 시청으로 진격해오는 시위대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시작하였다. 알베르트 마카쇼프(Альберт Макашов)의 전직 소련군 병력이 무장하여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서, 당시 시청 근처에는 AK-74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과 장갑차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가 시작되자 마카쇼프의 병력이 경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시청과 경찰의 작전본부까지 점령했다. Зарядье Парк (자랴쥐 공원)은 알베르트 마카쇼프(Альберт Макашов)의 전직 소련군 병력이 시청을 공격하기 위해 본거지로 삼았던 현대사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e95e0a87ef2e7.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