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무슬림 중 12이맘파가 운영하는 카페, 12이맘 시아파의 이맘들은 다음과 같다.

터키 시아 카페,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ibn Abi talib, 661년 죽음) : 이라크의 나자프(Najaf)에 묻혔다. 나자프는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② 하산 이븐 알리(Hasan ibn Ali, 669년 죽음) : 메디나(Medina)에 묻혔다. 이스마일파의 일부에서는 하산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맘은 아니었고 후세인의 대행권자라고 생각했다.
③ 후세인 이븐 알리(Husayn ibn Ali, 712년 죽음) : 이라크의 케르발라(Kerbala)에 묻혔고 케르발라는 시아파의 성지 중 가장 중요하다.
④ 알리 자인 알 아비딘(Ali Zayn al-abidin, 712년 죽음) : 메디나에 묻혔다. 시아파는 그의 어머니가 이란의 사산(Sassanid) 왕조의 마지막 왕의 딸이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과 뒤의 이맘들은 이란의 이슬람 이전 왕조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해오는 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세간에 따르면 사산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야즈다기르드(Yazdagird)의 딸로 추정되는 샤흐르바누(Shahrbanu)는 아나히드(Anahid) 혹은 아나히타(Anahita)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천사 이름과 일치되는데 이 천사는 사산왕조에서 아주 중요했다. 또한 이 천사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여신 이쉬타르(Ishtar)가 조로아스터교에 영입되었다는 뜻이다. 그러한 전설적 혈통은, 정통성을 뒷받침 해주는 필수적인 근거들로 이란의 왕가에서 일반적이었다.
⑤ 무하마드 알 바키르(Muhammad al-Baqir, 731년 죽음) : 메디나에 묻혔다. 어떤 종파에서는 그보다 더 활동적인 형제 자이드(Zayd)를 이맘(Imam)으로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시아파의 또 다른 교파인 자이드파(Zaydis)가 생겨났다. 이 파는 ‘다섯 이맘 파’로도 알려져 있다.
⑥ 자파르 알 싸딕(Ja‘far al-sadiq, 765년 죽음) : 메디나에 묻힘. 신학자, 교육자, 연금술의 개척자로 유명하며 시아 법학의 기초를 세웠다. 또한 그는 시아 교리를 구성하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시아파의 일부에서는 그가 큰 아들 이스마일을 후계 이맘으로 지명했다가 다른 아들 무사 알 카짐(Musan al-Kajim)을 총애하여 그것을 철회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마일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마마가 그의 아들 무함마드(Muhammad)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에게서 이스마일 파가 생겨났다. 이는 시아파의 또 다른 교파로서 역사적인 ‘일곱 이맘 파’를 이루는 많은 집단들 가운데 하나이며 파티마 왕조(Fatimids)와 암살단파(Assassins)도 이 파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기(分岐)는 이맘들의 정체성 문제라기보다 이스마일 파 신앙(Ismalism)의 중심에 근본적으로 뿌리가 다른 교리가 있기 때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⑦ 무사 알 카짐(Musa al-Kajim, 818년 죽음) : 바그다드의 카지마인(Kajimayn) 대성원에 묻혔다.
⑧ 알리 알 리다(Ali al-Rida), 알리 레자(Ali Reza)라고도 한다. (818년 죽음) :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마문(al-Ma’mun)은 리다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칼리프 위(位)에 임명했으나 여행 중 이란의 투스(Tus) 부근에 있는 나가운(Nagaun)에서 사망했다. 리다는 마문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칼리프 하룬 알 라쉬드(Harun al-Rashid)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 이 지역의 현재 이름은 ‘마쉬하드(Mashhad)’ 이다. 마쉬하드라는 뜻은 ‘순교지’를 말하며, 모든 이맘들의 성지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이맘은 ‘순교자’,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는 희생양과 같은 의미이다. 이곳은 이란 국경선 내에 있는 유일한 이맘의 묘이다. 아마도 이 묘는 시아파의 성지로는 케르발라(Kerbala)와 나자프(Najaf) 다음으로 중요할 것으로 보여 진다.
⑨ 무함마드 알 타키(Muhammad al-Taqi, ‘경건한 자’) 알-자와드(al-Jawad, 835년 죽음) : 바그다드의 카지마인(Kazimayn) 대성원에 묻혔다.
⑩ 알리 알 나끼(Ali al-Naqi, ‘순결한 자’, 868년 41세에 죽음) : 이라크의 병영 도시인 사마라(Samarra)에 묻혔는데, 이곳에서 칼리프들의 감시를 받았다. 아스카리(Askari, 군대의)는 그의 여러 별칭 중 하나다.
⑪ 하산 알 아스카리(Hasan al-Askari, 873년, 28세에 죽음) : 사마라(Samarra)에 묻힘.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감시를 받았다. 아카이드 알 시아(Aqaid al-Shi‘ah, ‘시아파의 신조’)에 의하면, 그는 법적으로 부인이 없었다. 그러나 시아파의 전승에 따르면 나르지스 하툰(Narjis Kha-tun)이라는 첩에게서 얻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 여인은 비잔틴 황제의 손녀다. 그녀는 여행 중에 사로잡혀 노예로 팔렸고, 운명적으로 이맘의 가문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⑫ 무함마드(Muhammad) : 마흐디 알 문타자르(al-Mahdi al-Muntajar, ‘기대하는 마흐디’) 혹은 알 카임(al-Qa’im, ‘영원무궁한 이맘’)이라고 부른다. 세이흐 무피드(Shaykh al-Mufid)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869년 샤반(Sha‘ban) 월 1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의 출생과는 별도로 〈용서의 밤〉으로 알려진 축제일이다. 873년에 그의 아버지가 죽자마자 〈소(小)은폐〉 기간으로 들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소(小)은폐〉 기간 동안 이러한 이맘(Imam)의 뜻은 네 명의 대행권자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고 믿는다. 940년에 네 번째 대행권자가 죽었는데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대(大)은폐〉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 중에는 아무도 이맘과의 접촉이 없었다. 그는 〈숨은 이맘〉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있다고 하며 마흐디(Mahdi)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아파 무슬림 중 12이맘파가 운영하는 카페, 12이맘 시아파의 이맘들은 다음과 같다.
터키 시아 카페,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ibn Abi talib, 661년 죽음) : 이라크의 나자프(Najaf)에 묻혔다. 나자프는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② 하산 이븐 알리(Hasan ibn Ali, 669년 죽음) : 메디나(Medina)에 묻혔다. 이스마일파의 일부에서는 하산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맘은 아니었고 후세인의 대행권자라고 생각했다.
③ 후세인 이븐 알리(Husayn ibn Ali, 712년 죽음) : 이라크의 케르발라(Kerbala)에 묻혔고 케르발라는 시아파의 성지 중 가장 중요하다.
④ 알리 자인 알 아비딘(Ali Zayn al-abidin, 712년 죽음) : 메디나에 묻혔다. 시아파는 그의 어머니가 이란의 사산(Sassanid) 왕조의 마지막 왕의 딸이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과 뒤의 이맘들은 이란의 이슬람 이전 왕조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해오는 얘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세간에 따르면 사산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야즈다기르드(Yazdagird)의 딸로 추정되는 샤흐르바누(Shahrbanu)는 아나히드(Anahid) 혹은 아나히타(Anahita)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천사 이름과 일치되는데 이 천사는 사산왕조에서 아주 중요했다. 또한 이 천사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여신 이쉬타르(Ishtar)가 조로아스터교에 영입되었다는 뜻이다. 그러한 전설적 혈통은, 정통성을 뒷받침 해주는 필수적인 근거들로 이란의 왕가에서 일반적이었다.
⑤ 무하마드 알 바키르(Muhammad al-Baqir, 731년 죽음) : 메디나에 묻혔다. 어떤 종파에서는 그보다 더 활동적인 형제 자이드(Zayd)를 이맘(Imam)으로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시아파의 또 다른 교파인 자이드파(Zaydis)가 생겨났다. 이 파는 ‘다섯 이맘 파’로도 알려져 있다.
⑥ 자파르 알 싸딕(Ja‘far al-sadiq, 765년 죽음) : 메디나에 묻힘. 신학자, 교육자, 연금술의 개척자로 유명하며 시아 법학의 기초를 세웠다. 또한 그는 시아 교리를 구성하는 많은 일화를 남겼다. 시아파의 일부에서는 그가 큰 아들 이스마일을 후계 이맘으로 지명했다가 다른 아들 무사 알 카짐(Musan al-Kajim)을 총애하여 그것을 철회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마일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마마가 그의 아들 무함마드(Muhammad)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에게서 이스마일 파가 생겨났다. 이는 시아파의 또 다른 교파로서 역사적인 ‘일곱 이맘 파’를 이루는 많은 집단들 가운데 하나이며 파티마 왕조(Fatimids)와 암살단파(Assassins)도 이 파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기(分岐)는 이맘들의 정체성 문제라기보다 이스마일 파 신앙(Ismalism)의 중심에 근본적으로 뿌리가 다른 교리가 있기 때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⑦ 무사 알 카짐(Musa al-Kajim, 818년 죽음) : 바그다드의 카지마인(Kajimayn) 대성원에 묻혔다.
⑧ 알리 알 리다(Ali al-Rida), 알리 레자(Ali Reza)라고도 한다. (818년 죽음) :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마문(al-Ma’mun)은 리다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칼리프 위(位)에 임명했으나 여행 중 이란의 투스(Tus) 부근에 있는 나가운(Nagaun)에서 사망했다. 리다는 마문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칼리프 하룬 알 라쉬드(Harun al-Rashid)의 무덤 근처에 묻혔다. 이 지역의 현재 이름은 ‘마쉬하드(Mashhad)’ 이다. 마쉬하드라는 뜻은 ‘순교지’를 말하며, 모든 이맘들의 성지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이맘은 ‘순교자’,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는 희생양과 같은 의미이다. 이곳은 이란 국경선 내에 있는 유일한 이맘의 묘이다. 아마도 이 묘는 시아파의 성지로는 케르발라(Kerbala)와 나자프(Najaf) 다음으로 중요할 것으로 보여 진다.
⑨ 무함마드 알 타키(Muhammad al-Taqi, ‘경건한 자’) 알-자와드(al-Jawad, 835년 죽음) : 바그다드의 카지마인(Kazimayn) 대성원에 묻혔다.
⑩ 알리 알 나끼(Ali al-Naqi, ‘순결한 자’, 868년 41세에 죽음) : 이라크의 병영 도시인 사마라(Samarra)에 묻혔는데, 이곳에서 칼리프들의 감시를 받았다. 아스카리(Askari, 군대의)는 그의 여러 별칭 중 하나다.
⑪ 하산 알 아스카리(Hasan al-Askari, 873년, 28세에 죽음) : 사마라(Samarra)에 묻힘. 이곳에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감시를 받았다. 아카이드 알 시아(Aqaid al-Shi‘ah, ‘시아파의 신조’)에 의하면, 그는 법적으로 부인이 없었다. 그러나 시아파의 전승에 따르면 나르지스 하툰(Narjis Kha-tun)이라는 첩에게서 얻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 여인은 비잔틴 황제의 손녀다. 그녀는 여행 중에 사로잡혀 노예로 팔렸고, 운명적으로 이맘의 가문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⑫ 무함마드(Muhammad) : 마흐디 알 문타자르(al-Mahdi al-Muntajar, ‘기대하는 마흐디’) 혹은 알 카임(al-Qa’im, ‘영원무궁한 이맘’)이라고 부른다. 세이흐 무피드(Shaykh al-Mufid)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869년 샤반(Sha‘ban) 월 1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의 출생과는 별도로 〈용서의 밤〉으로 알려진 축제일이다. 873년에 그의 아버지가 죽자마자 〈소(小)은폐〉 기간으로 들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소(小)은폐〉 기간 동안 이러한 이맘(Imam)의 뜻은 네 명의 대행권자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고 믿는다. 940년에 네 번째 대행권자가 죽었는데 그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이 때부터 〈대(大)은폐〉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 중에는 아무도 이맘과의 접촉이 없었다. 그는 〈숨은 이맘〉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살아있다고 하며 마흐디(Mahdi)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