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잔트 고성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로 진군할 당시 베수스와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해 축조했다. 이후 위구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을 당시에 파미르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셀주크투르크, 호라즘의 지배를 받았고 몽골 칭기즈칸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이후 일 한국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티무르 시대를 거쳐 18세기 사파비 페르시아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이후 19세기 말 러시아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지진에 의해 다시 붕괴되었고 최근 박물관으로 재조성되어 활용되고 있다. 고성 박믈관 대문에 페르시아 사자 두 마리가 문에 새겨져 있으며 박물관 비용은 15тчс (한화 약 1,750원)인데 사진 찍을려면 10тчс (한화 약 1,170원) 더 주면 된다.

타지키스탄 북부의 제2도시 후잔트(Khujand)에 있는 수그드주 역사박물관(Historical Museum of Sughd)이다. 이 박물관은 고대 및 중세의 요새 유적인 후잔트 요새(Khujand Fortress)의 성벽 일부를 1999~2006년에 걸쳐 중세풍 성곽 스타일로 현대식으로 복원 및 재건하여 개관한 곳이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후잔트는 알렉산더로 인해 유명해졌고 알렉산더로 인해 재창조되었으며 알렉산더로 인해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리스의 변방으로 알려진 마케도니아에서 출현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고대사의 주역 가운데 한 인물이다. 끊임없는 정복욕과 적극적인 상업 정책으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유럽의 강자로 부상한다. 또한 예술과 문학 등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공략한 때는 B.C 334년이었다. 곧 이어 페르시아로 군대를 옮겨 약 7년 만에 페르시아 일대를 석권했다. 그 여세를 몰아 중국을 정복하려고 진군하려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중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인도가 있다는 것을 판단하고 B.C 327년에 인도의 서북부로 진격하였다.
그의 침공 루트는 카불을 넘어 힌두쿠시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북부 인도를 횡단하여 서북 일대를 석권하였다. 당시 인도의 북부 지역을 탁실라(Taxila)와 제룸(Zerum)의 두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두 왕국을 공격해 붕괴시켰으며, 계속 동남쪽으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군기가 헤이해지고, 휘하의 장병들은 도저히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회군을 결정한 알렉산드로스는 B.C 326년경부터 바빌로니아로 철수를 시작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회군을 하면서 인더스 유역의 여러 나라들을 종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점령지에 괴뢰 정부를 수립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신드에 이르러 대군을 둘로 나누어 회군했다.
한 부대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마크란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로 갔다. 또, 다른 군대는 인더스 강을 거슬러서 아라비아 해에 도착한 후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로 회군했다. 이와 같이 분리된 두 부대는 호르무즈에서 합류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알렉산더는 바빌론(Babylon)에서 사망했다.

후잔트 고성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박트리아로 진군할 당시 베수스와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해 축조했다. 이후 위구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을 당시에 파미르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셀주크투르크, 호라즘의 지배를 받았고 몽골 칭기즈칸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이후 일 한국에 의해 복구되었지만 티무르 시대를 거쳐 18세기 사파비 페르시아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 이후 19세기 말 러시아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지진에 의해 다시 붕괴되었고 최근 박물관으로 재조성되어 활용되고 있다. 고성 박믈관 대문에 페르시아 사자 두 마리가 문에 새겨져 있으며 박물관 비용은 15тчс (한화 약 1,750원)인데 사진 찍을려면 10тчс (한화 약 1,170원) 더 주면 된다.
타지키스탄 북부의 제2도시 후잔트(Khujand)에 있는 수그드주 역사박물관(Historical Museum of Sughd)이다. 이 박물관은 고대 및 중세의 요새 유적인 후잔트 요새(Khujand Fortress)의 성벽 일부를 1999~2006년에 걸쳐 중세풍 성곽 스타일로 현대식으로 복원 및 재건하여 개관한 곳이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후잔트는 알렉산더로 인해 유명해졌고 알렉산더로 인해 재창조되었으며 알렉산더로 인해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리스의 변방으로 알려진 마케도니아에서 출현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고대사의 주역 가운데 한 인물이다. 끊임없는 정복욕과 적극적인 상업 정책으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유럽의 강자로 부상한다. 또한 예술과 문학 등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왕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공략한 때는 B.C 334년이었다. 곧 이어 페르시아로 군대를 옮겨 약 7년 만에 페르시아 일대를 석권했다. 그 여세를 몰아 중국을 정복하려고 진군하려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중국과 페르시아 사이에 인도가 있다는 것을 판단하고 B.C 327년에 인도의 서북부로 진격하였다.
그의 침공 루트는 카불을 넘어 힌두쿠시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북부 인도를 횡단하여 서북 일대를 석권하였다. 당시 인도의 북부 지역을 탁실라(Taxila)와 제룸(Zerum)의 두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두 왕국을 공격해 붕괴시켰으며, 계속 동남쪽으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군기가 헤이해지고, 휘하의 장병들은 도저히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회군을 결정한 알렉산드로스는 B.C 326년경부터 바빌로니아로 철수를 시작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회군을 하면서 인더스 유역의 여러 나라들을 종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점령지에 괴뢰 정부를 수립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신드에 이르러 대군을 둘로 나누어 회군했다.
한 부대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마크란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로 갔다. 또, 다른 군대는 인더스 강을 거슬러서 아라비아 해에 도착한 후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로 회군했다. 이와 같이 분리된 두 부대는 호르무즈에서 합류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알렉산더는 바빌론(Babylon)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