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심장, 부하라와 우즈베크의 탄생

알렉세이 정
2026-08-31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멀리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낙타 대상들이 중국과 한반도를 향해가는 중간지점이었다. 돌아갈 때는 중국을 출발한 낙타대상들이 기나긴 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지나 이란으로 향하는 험난한 사막을 앞에 두고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 휴식처였다. 끝없는 사막과 더 넓은 초원사이에 점점이 나타나는 오아시스는 바로 교역도시가 되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실크로드 도시가 부하라다. 부하라에서는 바자르(시장)가 어디냐고 물으면 의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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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say one thing. You will lose lots, if you not visit Bukhara. 출처 : Bukhara, The Capital of Islamic Culture


도시전체가 역사와 애환을 담은 전통시장이다. 성채 안쪽의 어디를 가도 중세의 분위기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 사람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기나긴 좁은 골목 양쪽에는 2층의 흙벽돌 집이 이어진다. 그 좁은 골목 안에도 작은 시장이 숨어있다. 똑같은 집 모양과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다정한 사람들, 색깔을 입혀 잘 차려 입은 의상, 골목 좌판 군데 군데 보이는 말보로 양담배와 코카콜라만 없다면 이곳은 정지된 중세의 도시 뒷골목이다. 그 좁은 곳에도 시장은 살아 있다.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정주문명과 유목문명이 공존했었고, 이는 현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그러하다. 제정러시아, 소련을 거치면서 제도적인 공통 자산들을 가지고 있지만, 독립 이후 개별 국가들에서 관련 상황 전개는 차이를 보인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과 종교 모두 다원성을 기반으로 구성원의 종교간 관계와 다종교적 공동체 통치권력이 공식적인 종무제도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즈베키스탄은 역사적으로 정주민 전통이 다수인 사회여서 빠르게 정착된 이슬람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중앙아시아 국가이다. 


반면 카자흐스탄은 전통 공동체가 유목민이었기에, 이슬람의 정착 및 확산이 상대적으로 늦었고, 사회 다수집단 공동체가 소련 시기에 뒤바뀌면서 가장 느슨한 중앙아시아 이슬람 공동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스테자 마드라사는 부하라 칸국 시기에 건축된 것이다. 시조인 아불 파스 무함마드(شیبک خان ازبک)는 후에 샤이바니 칸이라고 불리는 인물(1451~1510)로, 1500년부터 우즈베크 족의 칸이었다. 그는 전임자들이 추구한 우즈베크 부족들의 통합을 위한 노력을 계승하였으며,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트란스옥시아나에 국가를 건국했다. 


무함마드 샤이바니는 조부인 아불 하이르 칸이 사망한 이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티무르 제국에서의 망명 생활을 거쳐 1487년 모굴 칸국의 마흐무드 칸의 신하가 되었다. 마흐무드 칸으로부터 야시시(Yasisi) 지역의 통치를 위임 받은 후 샤이바니는 흩어져 있던 우즈베크 유목민들을 재규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샤이바니는 1500년 카자흐 세력과 휴전을 맺고 트란스옥시아나 정복에 나서게 된다. 1500년, 샤이바니는 할아버지인 아불 하이르 칸이 그러했듯이 티무르 제국을 사마르칸트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티무르 제국의 지도자 바부르, 후일 무굴 제국의 창시자로 불리는 자에 대한 여러 차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505년 그는 사마르칸트를 재점령하고, 1506년에는 부하라를 점령했으며, 1507년에는 헤라트마저 점령하여 샤이바니 제국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1508~1509년 샤이바니는 북쪽의 카자흐 칸국을 공격하고 약탈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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