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하류를 지배한 마지막 타타르 칸국, 아스트라한

알렉세이 정
2026-09-02

아스트라한 칸국은 킵차크 칸국의 칸인 마흐무드 빈 쿠축(Mahmud bin Küchük)의 후손 카심(Qasim)에 의해 1446년 건국되었다. 아스트라한 칸국은 이틸 강으로 알려진 볼가 강이 카스피 해로 흘러드는 유역에 있던 아스트라한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 칸국의 수도인 아스트라한은 중요한 스텝로드 무역로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스트라한은 부강한 나라들과 유목민들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외부 세력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중앙 권력도 약화되었다. 이들 국가를 구성했던 민족들이 대부분 유목민인데다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부족장들이 세력을 합쳐 외적의 침입을 격퇴한 것도 중앙 권력 약화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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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화가 피리나트 할리코프(Фиринат Халиков)가 2001년에 그린 〈스윰비케와의 작별(Прощание с Сююмбике)〉, 출처 : art16.ru


이로 인하여 국가 정권의 연속성과 견실함이 부족해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며 그 사이 킵차크 칸국을 승계한 노가이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이 공통적으로 영유한 지역이 존재했는데 이들 지역을 통치하는 귀족 가문이 노가이와 관련이 있어서 노가이 가문으로 불리게 되었고 아스트라한 칸국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가문이었다. 카심 칸(1446~1490)과 그의 동생 압둘 카림(Abdal-Karim) 칸 때부터 킵차크 칸국이나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는데, 이를 통하여 주변 국가들과의 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02년 킵차크 칸국이 붕괴되자 크림 칸국과 노가이 족이 아스트라한 칸국을 완전히 정복하려 했다. 


아스트라한 칸국은 1525년까지 이들과 투쟁을 벌이면서 국력이 상당히 쇠퇴해졌고, 이러한 투쟁 기간 과정에서 칸도 자주 바뀌게 되면서 중앙 집권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523년에는 카심 2세(Qasim II, 1504~1532)가 크림 칸국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지만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러시아의 공세를 피할 수 없었다. 크림 칸국의 샤힙 1세(Sahib I, 1532~1551) 베이는 1549년 아스트라한 칸국을 침략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야구르치(Yamghurchi) 칸과 함께 많은 포로들을 생포했다. 야구르치 칸은 오스만투르크의 개입으로 풀려나 술탄 지위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스트라한의 군대는 짐승 가죽과 사슬로 이루어진 특유의 갑주를 착용하였으며 마찬가지로 특유의 훈련을 받았고, 특유의 무기인 머스켓, 자루 도끼, 검, 활, 창 등을 이용하였다.


그 중 머스켓의 사용 비율은 극히 낮았으며 자루 도끼는 직접적인 육탄전 외에 그들 특유의 기병들과 함께 적의 머리를 공격하기 위한 보조 무기로써 필수적으로 동원되었기도 했다. 이러한 크림 칸국과 카잔, 그리고 아스트라한 칸국 간의 동맹과 전쟁은 이들을 토벌하려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이 동맹을 맺긴 하였지만 그 상황이 매우 느슨함을 이용해 러시아는 1552년 카잔 칸국을 정벌하고 1555년에는 완전히 병합한 뒤, 1년 뒤인 1556년에는 아스트라한 칸국을 급습하여 정복할 계획을 세운다. 카스피 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아스트라한 칸국은 볼가 강 하류 지역에 대한 영유권 강화를 여러 요새들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당시 러시아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었고 몽골-타타르를 계승한 국가들 중 크림 반도에 위치한 크림 칸국을 제외하면 러시아와 맞서기 어려운 상대들이었다. 이미 국력이 떨어지고 있었고 다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강한 국가들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크림 칸국의 경우, 오스만투르크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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