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에서 문명으로, 유라시아를 잇다 :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도시의 역사

알렉세이 정
2026-09-14

'비단길', 영어로 '실크로드'라는 어휘의 유래는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옛 교역로를 연구하던 중 당시의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것에서 착안하여 '자이덴슈트라쎄(Seidenstraße)'로 명명하면서 사용되었다. 이 실크로드라는 말은 동서방 간의 교역로 중 스텝지대의 '초원길'과 인도양을 통해 이어지는 '바닷길'을 제외한 사막과 오아시스 일대의 도시들을 거치는 교역 경로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교역로가 확대되면서 다소 부적절해졌지만 유라시아의 원거리 무역과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적이고 관용적인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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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양을 연결했던 핵심 무역망인 실크로드(Seidenstraße, 비단길)의 경로를 상세히 보여주는 지도, 출처 : Advantour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부른다.넓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B.C 10,000년 전후 빙하기가 끝난 후 문명이 발생하고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몇 갈래의 교통로로서 지금까지 문명 간 교류의 통로로 기능하는 것을 지칭한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실크로드는 B.C 8~9세기부터 만들어져 근대 이전까지 기능한 동서문명 교류의 통로를 지칭한다. 초원길 또는 스텝길(Steppe Silk Road)은 비단길 가운데 가장 먼저 발생한 교역로로, 흑해, 아랄해, 카스피해 일대에서 살던 스키타이인들이 개척하였다. 유라시아 북방 스텝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길이며 선사 시대부터 이용되었다. 오아시스로가 개척되기 전부터 초기 문명 전파의 주요 통로로 기능했었다.


몽골 고비 사막 부근에서 흉노가 성장하면서 광활한 초원지대가 단일한 정치 체제로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초원길 경영이 이루어졌다. 이 초원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흉노의 선우에게 통행증을 제시해야 했는데, 통행증이 없다면 이 길을 우회해서 가야 하므로 신체적, 경제적인 한계가 굉장히 많이 따랐다. 그러나 흉노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이 과정에서 한나라의 비단이 헐값 혹은 공짜로 흉노에 유입된다. 흉노는 이 비단을 그대로 서부 지역에 전달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토키(Toki)는 큰 거리의 교차점을 돔(반구형) 지붕으로 덮은 노천시장. 아스라한 실크로드의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한 여름 최고기온은 42℃~47℃.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태양의 강렬한 기운 은 자연스레 토키를 탄생시켰다. 돔 지붕 아래선 서늘한 그늘은 물론 바람도 들어와 시원함 누릴 수 있다. ‘피서’ 건물 토키는 16세기에 세워졌다. 낙타도 드나들 수 있도록 사람 키의 두 배가 넘게 만든 문도 인상적이다. 초창기엔 토키별로 전문 상점의 성격이 강해 각기 다른 품목을 취급했다. 즉 1번 돔 ‘자르가른 토키(Toki Zargaron)’는 금과 보석류를, 2번 돔 ‘텔파푸루숀 토키(Toki Telpak Furushon)’는 모자와 의류를, 3번 돔 ‘사라폰 토키(Toki Sarrafon)’는 열쇠와 금고 등을 제작해 판매한 것이다. 특히 3번 돔에 있던 환전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지난 세월을 곱씹게 한다. 


요즘엔 어느 토키를 가든지 비슷한 품목을 만날 수 있어 개성은 다소 무뎌졌다. 시장 내엔 일반 상점 뿐 아니라 공예품 숍, 아트 스튜디오 등이 줄지어 있어 보물 같은 구경거리로 가득하다. 중앙아시아 도시들은 외견상 다른 무슬림 도시들과 유사하지만, 중앙아시아 무슬림 사회가 갖는 특수성을 반영하여 독특한 면모도 보인다. 중앙아시아 도시에 관한 연구가 19세기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러시아의 동양학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특히 러시아 동방학의 거장 바르톨드(Bartol’d)가 주장한 중앙아시아 도시들의 삼중구조설은 유명하다. 즉 중앙아시아 도시들이 전통적으로 쿠한디즈(Kuhandiz)나 아르크(Ark)로 불리는 성채, 샤흐리스탄(Shahristān)이라 불리던 도심, 그리고 라바드(Rabaḍ)라고 불리던 교외의 삼중구조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드라사 내부 장식 중 특이한 것은 인물이나 동물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인물이나 동물의 조각은 물론이고, 인물이나 동물을 묘사한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벽화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꾸란> 59:24절의 하나님만이 진정한 ‘창조주’로서 인간이나 동물을 만들 수 있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조각이나 그림은 자칫 잘못하면 우상숭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의 우상숭배 경계 때문에 마드라사 내부 장식에서는 인물상 및 동물상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아름다운 문양의 아랍어 꾸란 장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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