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지켄트 고고학 서적들

판지켄트 고고학 서책들은 언제나 봐도 반갑다. 마음 같애서는 저 책들 다 갖고 싶으다. 타지키스탄의 고고학은 기반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지하고 있다. 현재 판지켄트 발굴은 러시아 에르미따쉬 박물관 동양부에서 60여년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이곳 소장인 파벨 루리에 교수는 타지키스탄 출신으로 현재 나이 44세로 젊다. 그는 전 세계에 걸쳐 10명 안팎에 불과하다는 소그드어 전문가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는 천재다. 모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학부와 오스트리아 유학생활에서 소그드어 뿐만 아니라 그와 더불어 이제는 함께 사멸해 버린 언어들인 고대 박트리아어와 호라즘어를 배웠다. 타지키스탄의 고고학이 매우 열악한 환경인 가운데 그런 인물이 배출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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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이면서 아랍문서에 정통한 초대 대장 알렉산드르 주제비치 자쿠봅스키가 1953년에 유명을 달리하시고  이란 역사학 전문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자코노프 교수가 판지켄트 유적의 발굴을 지휘했었다. 그러나 1954년에 자코노프 교수가 갑자기 폐혈증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아랍과 페르시아 문헌에 정통한 고고학자 알렉산드르 미르코비치 벨레니스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 교수가 1977년까지 판지켄트 발굴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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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판지켄트 유적 발굴에 최정점으로 달하며 가장 큰 성과를 이룩한 교수가 1977년 조사를 지휘하기 시작한 보리스 일리이치 마르샤크 교수였다. 판지켄트 유적은 에르미따쉬 박물관에서 1946년 이래 지금까지 딱 한 해만 빼고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2008년 단 한 해만 재정 문제 때문에 발굴조사 대신 유적 복원사업만 했는데 러시아가 사실상 국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들어갔었던 해였기 때문이다. 2008년을 제외하고 장장 64년 동안 판지켄트 유적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발굴대장 기준으로 볼 때 벌써 3세대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마르샤크 교수는 2004년도에 사망했고 판지켄트 발굴지에 묻히길 원하여 그의 묘소는 판지켄트 유적 발굴지 옆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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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관이 60여 년을 같은 유적을 발굴하는 데 따른 장점은 무엇보다 자료 축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년 15명에서 50명 안팎인 판지켄트 조사대에는 고고학 전공자 외에도 벽화 전문가와 화가, 보존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작업을 함께하고 있으며 영국, 미국, 프랑스 팀은 물론이고 심지어 슬로바키아 팀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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